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 일상생활의구조 -하 까치글방 98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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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제시하고자 한 것은 음식으로부터 가구까지 또 기술에서부터 도시까지 모든 광경을 전체적으로 보려는 시도였으며, 나아가서 필연적으로 물질생활이 현재 어떠하고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경계를 한정하려는 시도였다... 두번째 목적은 서술상의 부조화에 빠질 우려 때문에 이제까지 역사가들이 거의 제시하지 않았던 일련의 풍경들을 그려가면서, 분산된 자료들을 분류하고 정돈하여 커다란 흐름을 잡아내고, 단순화된 역사 설명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818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1-2>는 일상생활의 모습을 통해 3층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하층부인 물질생활의 모습을 그려낸다. 15-18세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물질생활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경제 체제하에서 여러 제약으로 인해 분명히 성장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이러한 한계는 기술, 에너지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의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전 시기에 있었던 일련의 흐름 덕분이었다. 


 중요한 점은 사실 축력과 인력, 그리고 땔나무가 이론의 여지 없이 상위의 두 계정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레방아를 이용한 해결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은 것은 부분적으로는 기술적인 이유에서였지만, 더 큰 이유는 물레방아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던 반면 이 시대에는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의 부족은 앙시앙 레짐 경제의 주요한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선행단계가 있었다. 가축의 힘을 보다 잘 이용하게 해주는 멍에의 발전, 나무를 태워서 얻는 힘, 강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초보적인 모터,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의 힘을 작업에 투여하는 것 등에 힘입어 15-17세기 중에 유럽은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었다. 느리기는 했지만 힘과 세력, 실용적인 지성(intelligence pratique)이 증대했다. 1730-1740년대부터 점점 더 활발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앞시기의 팽창에 근거한 것이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529


 이전 시기의 물질문명은 분명히 급격한 개선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물질문명의 전세계적인 전파는 하나의 문명권의 독주(獨走)를 허용하지도 않았고,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유럽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결코 앞선 문명이 아니었다.


 중국은 야금술이 대단히 일찍 발달했다는 점에서 논의의 여지가 없는 우월성을 가진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5세기경에 이미 철의 주조를 알고 있었고, 일찍이 석탄을 사용했으며, 아마도 기원후 13세기에 코크스를 이용해서 광석을 용해했던 듯하다. 이에 비해 유럽은 14세기까지는 용해된 상태의 철을 얻지 못했으며, 아마도 17세기에 코크스를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대체로 1780년대 이후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5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앞설 수 있었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전쟁(war)으로 귀속된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에서 '사치'가 유럽사회의 특징 중 하나였다면, 2권에서는 '전쟁'이 또다른 특징으로 언급된다. '사치'를 위한 욕망, 욕망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전쟁'을 위해 유럽은 물질문명을 발전시켜나간다. 교회 종을 만드던 주조술로 총포를 만들었으며, 총포를 조달하기 위해 금융업을 발전시켰고, 금융업은 많은 자본이 필요한 인쇄업에 투자되면서 정보를 독점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순환 연결고리는 유럽의 '도시(sity)'가 갖는 특징이다.


 총포와 화기는 국가의 전쟁, 경제생활, 무기 생산의 자본주의적 조직 등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조금씩 조금씩 산업이 집중되는 모습을 띠어가기 시작했으나 그것이 완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산업은 여전히 다양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어느 한 곳에 마음대로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이것을 해결하려면 강을 따라가거나 숲을 통과하여 에너지를 찾아가야 했다. 오직 부유한 국가만이 새로운 전쟁의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자기 책무를 수행하며 독립을 유지하던 도시들이 쇠퇴한 것도 이런 문제에서 기인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562


 중요한 것은 13세기부터 장기적인 긴장이 물질문명을 흥기시켰고 서구세계의 심리를 변형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황금에 대한 갈망, 세계에 대한 갈망, 혹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실용적인 적용에 대한 추구가 늘 함께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실제적인 발견들이나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발견들이 집적된 것, 그리고 에너지원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크게 흥미를 가진 것은 유럽이 본격적으로 성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유럽의 참모습이었으며 우월성의 약속이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593


 정신과 지성에 관한 것으로부터 일상생활의 물품과 도구에 관한 것까지 수많은 문화적 자산들 사이에 관계를 정립하는 것, 다시 말해서 질서를 정립하는 것, 그것이 문명이다(p819)... 인구가 밀집된 모든 세계는 한묶음의 기본적인 응답들을 만들었고, 유감스럽게도 거기에 굳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한 집착을 가져오는 타성의 힘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요 요소의 하나이다. 문명은 역사의 한 카테고리이며 필요한 분류이다. 15세기 이전 개별적인 문명 혹은 문화가 있었다(p820)... 많은 페이지에 걸쳐서 나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치와 빈곤이라는 삶의 두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막연한 단어인 사회보다는 차라리 사회경제(socio- economie)를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그렇지만 사회와 경제라는 두 좌표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원인이면서 결과인 국가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를 띠고 등장하여 관계를 교란시키고 왜곡시키며, 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경제의 구조물 형성에 때로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821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에서 우리는 물질문명에서 꼭대기 층인 자본주의로 가는 '사다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물질문명이 느린 속도로 수평적으로 퍼져나갔다면, 도시는 외부와 단절하여 수직적으로 응축된다. 성벽으로 둘러쌓여진 내부공간은 치열한 계급 투쟁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함께 지켜나가할 공동의 공간이었다. 오늘날 프리이어리그(Premier League), 분데스리가(Budesliga), 라리가(La liga)에서 보여지듯 도시 중심의 유럽문화는 길드(guild)문화였으며 동시에 부르주아(bourgeois) 문화였다. 이제 시간이 흐른 뒤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공간적 제약이 극복된다면, 이들 도시들은 견고하게 묶여지고 근대 민족주의(nationalism)가 탄생할 것이었다. 


 어느 곳에 있든 간에 언제나 도시는 명백한 규칙성을 가진 일정한 수의 현실(realite)과 가정(processu)을 의미한다. 강제적인 분업 없이는 도시가 존재할 수 없고 도시가 없으면 약간이라도 진보한 분업이 있을 수 없다. 시장 없는 도시는 불가능하고 도시 없는 지역시장 혹은 민족시장은 불가능하다... 사실 사회와 경제의 근본적인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시장의 이쪽에 위치하느냐 저쪽에 위치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또 보호와 동시에 강제를 하는 권력이 없다면 도시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만일 권력이 도시의 외부에 존재한다면 이 권력은 도시 안에서 추가적인 차원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성격의 활동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가 없다면 세계에 대한 개방이나 원거리 교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696


 유럽의 차이점과 독창성은 무엇인가? 유럽의 도시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도시는 독자적인 세계로서,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경향에 따라 발전해왔다. 도시는 영방국가를 눌러 이겼다 ; 영방국가는 느릿느릿 자리잡아갔고, 도시가 자신의 이해에 맞는다고 판단하여 도와줄 때에만 영방국가가 확대되었으며, 그나마 도시의 운명의 확대판, 그리고 흔히는 무미건조한 복사판에 불과했다. 도시는 주변 농촌 지역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지배했고, 마치 식민지 이전의 식민지처럼 다루었다(도시 다음에는 국가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을 그대로 다룰 판이었다). 도시의 연락망은 마치 성좌(星座) 같은 모양이었는데, 도시는 이 신경망을 통해 자신의 경제정책을 운영했으며, 흔히 방해물을 깨버리고 언제나 특권들을 만들어내고 또 되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지켜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742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의 결론부는 유럽의 도시로 마무리된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명품 아파트 단지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 물물교환과 화폐경제가 공존하는 시장경제, 그리고 이들 위에서 유일하게 자율성을 갖는 자본주의가 만나는 수직적 공간인 도시. 독자들은 1부의 마지막인 도시를 통해 2부의 시작 시장경제로 자연스럽게 안내된다.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에 해당되는 내용은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의 두 저서 <사치와 자본주의> <전쟁과 자본주의>와 연결된다. 관심있는 이들은 이와 함께 읽는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제 2부로 넘어갈 차례다...


 경제생활과 함께 우리는 일상사, 또는 무의식적인 일상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제생활은 아직 규칙성을 띠고 있다.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발달해온 분업은 매일매일의 활동적이고 의식적인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분리와 만남을 가져온다... 그러나 제일 꼭대기층에는 자본주의와 그것이 사방에 펼쳐놓은 광대한 그물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미 악마적인 놀음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정교한 기구는 제일 아래 수준에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아마도 모든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제1장에서 불평등한 세계의 수준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 점을 말하려고 했다. 이 세계를 활성화시키고 상층의 구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은 크든 작든 이 불평등, 이 부정의, 그리고 이 모순이다. 이 상층의 구조만이 진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자본주의만이 상대적으로 운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822


 이것이 전(前)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모습을 창출하도록 만드는 요소이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물질적 진보인 동시에 인간에 의한 인간의 가혹한 착취를 가져온 원인이며 그 표시이다. 그것은 반드시 인간의 노동인 "잉여가치"의 수취에 의한 것만은 아니며, 힘과 상황의 불균형에서도 기인된다. 그러한 불균형 때문에 한 국가의 차원이든 전세계의 차원이든 상황에 따라 언제나 정복할 곳이 생기고, 다른 것보다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착취 분야가 생긱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823


모든 것이 기술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드센 노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고 단조로운 노력도 포함된다... 기술은 결국 역사의 넓이를 가지고 있고, 필연적으로 역사의 완만함과 모호함을 나누어가진다. 기술은 역사에 의해서 설명되고 또 기술이 역사를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못 된다. 이와 같이 그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못 된다. 이와 같이 역사 전체라는 극단적으로 확대된 영역에서는 하나의 움직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움직임과 다양한 방향, 다양한 "톱니바퀴의 물림"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결코 단선적인 역사란 없다. - P473

참으로 이상한 것은 중국이 그렇게 일찍이 앞서가다가 13세기 이후에 정체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아무런 진보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용해와 제철 기술의 성취는 단지 앞시대 것의 반복에 불과했다. 코크스를 이용한 용해는, 그것이 알려져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발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헤아리기도 힘들고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중국의 운명은 전체적으로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 P538

또 다른 문제는 유럽의 뒤늦은 성공이다(p538)... 11세기나 12세기 이후 유럽에서 수차를 사용하게 된 것은 결정적인 진보를 가져왔다. 이것은 대단히 느린 과정이기는 했지만 어떠한 값을 치르고서라도 모든 중요한 생산지역에 설치되었다. 숲 속의 제철소에 대신해서 간변에 제철소가 들어섰다. 거대한 풀무, 광석을 부수는 공이, 그리고 여러 번 가열한 철을 두드리는 망치 등을 물의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진보와 아울러 14세기 말에 용광로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 P540

상품으로서 책은 도로, 교통, 시장에 연결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책은 유럽에 유리하게 힘을 더해주는 수단이었다. 모든 사상들이 서로 만나고 교환되었다. 인쇄술은 옛날의 필사본 형태로 좁은 한계 속에 갇혀 있던 책의 전파를 가속화시키고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강력한 장애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속화가 일어났다. 인쿠나불라의 시대인 15세기에는 라틴 어가 가장 중요했고, 그와 함께 종교서적과 신앙서적이 주류를 이루었다. 16세기 초에 고대 문헌들이 라틴어 및 그리스 어 판본으로 나옴으로써 인문주의의 공격적인 대의(大義)에 봉사하게 되었다. 약간 뒤에 종교개혁과 가톨릭 종교개혁 역시 인쇄술을 자신들의 필요에 이용했다. - P576

크게 보면 유럽내에 서로 상이한 두 개의 해상 세력이 있었던 셈이다. 하나는 지중해 세력이고 또 하나는 북유럽 세력인데, 이 둘은 곧 경제적으로 -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 서로 충돌하게 되었고 또 서로 섞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의 나포(拿捕)와 지배, 그리고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13세기에 리스본의 융성은 활기에 넘치는 주변적인(peripherique) 해상 자본주의 경제의 교훈을 점차 잘 습득한 중개항의 융성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조건 속에서 지중해의 긴 배들은 북유럽의 해상 세력에 모델을 제공했고,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라틴 범포를 제시해주었다. 반대 방향으로는 북유럽 배의 겹쳐잇기와 특히 역풍을 더 잘 헤쳐나가게 하는 에탕보 키가 바스크 족 등의 중개를 통해 지중해 지역 조선소에 전해져서 이곳 풍토에 적응해갔다. 교환과 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융합해갔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문명의 단위가 확고히 자리잡아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 P581

유럽은 나머지 지역과는 달랐으며 이미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유럽은 온갖 종류의 화폐를 경험하고 있었다. 최저층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도 더 흔히 물물교환, 자급자족, 그리고 원시적인 화폐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실제 화폐들을 아끼기 위한 오래된 궁여지책이나 임시변통이었다. 그러나 그 위의 상층에서는 금화, 은화, 동화 같은 금속화폐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유럽은 이런 것들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형태의 신용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대륙의 부(富) 위에 거대한 그물을 펼치는 이러한 체제는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었고 또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설명되는 것이었다. 16세기에 아메리카의 "보물"이 극동에까지 수출되어 이곳에서 지방화폐나 금속괴로 변환했으며 이것이 유럽의 이익이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 아니다. 유럽이 세계를 삼키고 소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 P659

자본주의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화폐의 게임에 들어간다면 그것들은 유사(類似) 화폐(pseudo-monnaie)이기도 하고 진짜 화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나면 캉티용이 제일 처음 이에 대해서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화해(reconciliation)"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만일 모든 것이 화폐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크레딧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슘페터가 말한 바와 같다 : "화폐는 크레딧 도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소비재라는 종국적인 지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 P691

15세기부터 서유럽의 도시들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인구는 늘어났고 대포의 발달은 이전의 성벽을 가소로운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성채는 수평 방향으로 확대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한번 만들어지면 거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더 이상 옮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방어선 앞으로 빈 공간을 두는 것이 방어 전술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건축, 정원 만들기, 식목 등을 금했다. 그래서 도시의 팽창이 저지되었고, 이전에 비해서 더욱 수직 방향으로의 변화를 강요당했다. - P723

각 지방이 자기 언어를 말하는 독립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자기 기념물을 건조하며, 파리와 그 세계가 알지도 못하는 세련되고 위계적인 사회를 이루었던 그 시대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상상도 하지 못한다. 괴물 같은 파리는 이 경탄할 만한 내용물을 먹고 그것을 소진시켜 버린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문제에서 파리나 런던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며, 다만 경제생활의 일반적인 움직임만이 여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은 이차적인 지점들을 소진시켜서 핵심적인 곳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지점들은 이번에는 확대된 세계의 차원에서 그들 사이의 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만일 수송 속도가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모든 질서가 바뀔 것이었다. - P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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