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歐陽修)가 논평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어지럽고 망하는 나라에는 반드시 먼저 그 법제(法制)가 무너지며, 그런 다음에 혼란이 그를 좇았는데, 이는 형세가 그러한 것이니 오대 시절이 이러하였다. 백문가와 왕수은은 모두 한(漢, 오대 후한)의 대신이고, 주(周, 오대 후주) 태조는 한낱 추밀사의 두자(頭子)를 가지고 이를 바꾸어 놓는 것이 마치 수졸(戍卒)을 바꾸는 것과 같았다.
이때에 태조(太祖)는 아직은 임금이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한 일이 이와 같다는 것은 대개 습관이 되어 보통 일이 되었던 것이니 그러므로 백문가는 감히 어길 수가 없었고, 왕수은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다.
태조는 이미 이렇게 처리하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한의 조정에서도 역시 내버려 두고 묻지 않았으니, 어찌 기강(紀綱)이 파괴되어 혼란이 극도에 달하지 아니하였다면 여기에 이르렀겠는가? 이것으로 선(善)을 가지고 천하를 염려하는 자는 감히 작은 것에서도 소홀히 하지 않아서 항상 그러한 것이 조금씩 밀려드는 것을 막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곽위는 사졸들을 어루만지고 길러주면서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며 조금이라고 공로를 세우면 번번이 그에게 상을 주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으면 항상 친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사병들은 똑똑하거나 못나거나 상관없이 진술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따뜻한 말씨로 이를 받아들였으며, 어기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지 않고, 적은 허물은 책망하지 아니하였다. 이로 말미암아서 장졸(將卒)들은 모두 곽위에게 마음으로 귀부하였다.

무릇 용기에도 성쇠(盛衰)가 있고, 공격하는 데도 완급(緩急)이 있으며, 시기에도 될 때와 아닐 때가 있고, 일에서도 뒤에 할 것과 앞에 할 것이 있는데, 길게 포위망을 만들어서 그를 지키며, 나는 것과 기어 다니는 것들의 길을 끊어 놓는 것만 같지 못하다.

아끼는 장수인 이심(李審)은 새벽에 조금 술을 마셨는데, 곽위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는 나의 장하(帳下)인데 제일 먼저 군율을 어겼으니 어떻게 여러 사람들을 가지런히 하겠는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여러 사람들에게 돌려 보였다.

무술일(27일)에 곽위가 대량(大梁, 하남성 개봉시)에 도착하여 들어가서 알현하니, 황제는 그를 위로하고 금과 비단·의복과 옥대(玉帶)·안마(鞍馬)를 하사하니, 사양하며 말하였다.
"신이 명령을 받고서 1년이 되어서 겨우 한 개의 성에서 이겼을 뿐이니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또 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밖에 있었지만, 무릇 경사(京師)를 진정시켜 편안하게 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었으며 병사들로 하여금 먹는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하셨는데, 모두 여러 대신들로 중앙에 있는 사람들의 힘이지 신이 어찌 감히 홀로 이러한 하사품을 받겠습니까? 청컨대 이것을 두루 상으로 주십시오."

논의하는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곽위는 그가 세운 공로를 오로지하지 않고 미루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신의가 아름다우며, 국가의 작위는 한 사람이 공로를 세우자 천하에 널리 퍼졌으니 역시 남용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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