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더 이상 아파트의 발코니는 실내와 외부를 이어주는 완충공간이 아니다. 또 고층 거주자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완화하는 동시에 거주자가 밖으로 나가 풍경을 감상하고 햇빛이나 바람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애초의 건축적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저 거실이나 침실을 늘려 폐쇄적인 가족주의를 강화하거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전용면적 늘리기 협잡을 통해 사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곳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는 "이윤 추구를 동기로 하는 생산·판매와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는 수요에 의해 성립되어 왔으며, 이러한 생산·수요상의 특성이 주거공간 양식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공공공간이 사유공간에 대해 양적·질적 열세에 놓여 왔다."이 말은 지난 50년 동안 아파트(단지)가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공동주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개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아파트다.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우리나라는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닌다. 전 인구 다섯 명에 한 명꼴, 1년에 약 870만여 명이 이삿짐을 싸고 푼다"는 사실은, 결국 5년만 지나면 한 동네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바뀐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공중에 떠다니는 포자들"이며, 살아온 세월과 시간은 추억과 기억을 애써 지우며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모여 공간을 인간화하고 사회화한 곳이 장소라는 점에서, ‘장소 만들기’는 곧 사람이 주인 되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선결조건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꾼 것이 ‘커뮤니티 재생’이다. 사람과 장소가 결합하는 커뮤니티 재생은 결국 장소에 대한 감수성을 동력으로 개인의 시선이 이웃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진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동력이기도 하다.장소는 한 곳에 오래 뿌리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대규모 단지 만들기가 관행으로 정착된 주거지 정비 방식은 일상의 다양성과 규모의 다채로움을 버리고 오로지 부익부빈익빈으로 귀결되는 이익 축적 시스템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서로 다른 개인들의 서로 다른 일상의 생활 역시 커다란 범주 안에서 유형별로 나뉘고, 그에 따른 대응관계로 생활을 바꾸어놓았다.

전국 도처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재건축 등은 사업 규모의 거대화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공간의 변화 대응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당장의 편안함과 비용으로 맞바꾼 편리 때문에 멀리 내다보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없앤다는 뜻이다. 도시공간에서 실핏줄처럼 서로 얽혀 만들어낸 다양한 골목길 경로를 모두 폐기한 채 대단위의 사유지를 조성함으로써 도시 속의 고립된 섬을 자초한다. 엄청나게 큰 집단적 사유지가 사설 오아시스로 변하면서 주변에 대해 개발압력과 긴장을 조성하고 대규모 단지 주변의 도시공간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은 사회적 소통의 공간이었던 골목길을 일거에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한다.

사회적 공간환경으로서의 ‘자폐와 독점의 문제’가 아파트단지의 중요한 쟁점이며, 이 쟁점은 다시 ‘전용공간에 대한 욕심과 공용공간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로 확장된다.

결국 사익의 확대와 공익의 무력화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관통하는 쟁점은 공공공간의 질적?양적 부족과 사적 공간의 기형적 과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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