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위·시중인 풍도(馮道)가 비록 수상(首相)이었으나 어기어 둘이 가능하다고 하여 조치하여 결정하는 것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말하였다. "풍도는 태평한 시절의 좋은 재상이지만 지금 어려운 시기여서 비유하자면 선승(禪僧)으로 하여금 매를 날게 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애초에, 고조(高祖, 석경당)가 북쪽 요새의 땅을 분할하여 거란에 뇌물로 주었는데, 이 일로 말미암아 부주(府州, 섬서성 부곡현) 자사인 절종원(折從遠)이 역시 북쪽에 속하게 되었다. 거란이 하서(河西, 섬서성 북부)의 백성들을 모두 옮겨서 요동(遼東, 요녕성)을 채우려고 하자 그 주(州)에 사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절종원이 이로 인하여 험요를 지키고 그들을 막았다.

오래 지나서 점차 느슨해졌는데, 두지민을 돌아보니 이미 거란 사람들에게 사로잡힌바 되자 황보우가 말하였다. "두지민은 의로운 군사이니 버려서는 아니 된다." 모용언초와 더불어 말에 뛰어 올라 거란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두지민을 빼앗아서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거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군사들을 출동시켜 와서 싸우니, 두 장수가 말하였다. "우리는 형세로 보아 도주할 수 없으니,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할 뿐이오."

황인풍이 조용히 진계순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충성·믿음·인(仁)·의(義)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내가 일찍이 부사(富沙, 富沙王인 王延廷)에게 공로가 있었는데 중간에 그를 배반하였으니 충성스럽지 아니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조카를 나에게 의탁하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를 죽였으니 신뢰가 없는 것이며, 근래에 건(建, 복건성 건구시)의 군사들과 더불어 싸웠는데 죽은 사람들이 모두 향곡(鄕曲)의 옛날 사람들이었으니 어질지 못하였으며, 처자를 버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을 어육(魚肉)으로 만들게 하였으니 의롭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몸 중에서 열은 가라앉았고 아홉은 떴으니 죽은들 남은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이어서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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