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옴팡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당신이 딸네 모르게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온 것도 당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옴팡밭을 팽개쳐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평소의 지병인 신경쇠약이 원인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신경쇠약은 왜 갑자기 악화되었을까? 거기에는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삼촌을 죽음의 궁지로까지 몰아붙였나? 혹시 항상 원만치 못했던 일년 동안의 서울 우리 집 생활에서 병이 악화된 게 아닐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여기 내려와서 무슨 충격적인 일을 당해도 당했을 테지. 그런데 친척 어른들의 얘기는 고향에 내려와서는 이렇다 할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울 우리 집에서 내려온 지 한달도 채 못되어 일어난 일이고…… 가책과 후회의 감정으로 나는 가슴이 오그라붙는 듯했다.
내게 고향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었다. 관광지니 어쩌니 하지만 그것도 지역 나름이어서 나의 향리인 서촌은 이렇다 할 관광자원도 없고 하늬바람이 몰아쳐 귤농사도 안되는 한촌(寒村)이었다.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 나의 향리는 예나 이제나 죽은 마을이었다. 말하자면 삼십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외면하여 살아오길 팔년, 그 유맹(流氓)의 십년 전으로 되찾아가려면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야 하리라. 기차를 타도 완행을 타서 반도 끝까지 가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밤을 지새우며 밤 항해를 해야 하는 수륙 천오백리 길. 차멀미, 뱃멀미에 시달리며 소주에 젖고 팔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 생각에 젖어서 허위허위 찾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이것이 내가 평소에 고향을 지척에다 두고서도 지구 끝처럼 아득하게 여기던 이유였다.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海龍)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을까?
이념과 명분은 오직 그들만의 독점물이었다. 석규가 먼저 일어나 술값을 치르고 나와버렸다. 완혁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넌 학교 선생 하는 여편네라도 있지만, 우리 식군 나 아니면 굶어 죽어.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 부모가 시골에 있고 앞으로도 이년 동안 더 학비를 대줘야 할 대학 다니는 여동생도 있어. 석규는 양품점에 들러 피 묻은 와이셔츠를 벗고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아저씨, 아저씨, 혹시 거기서 새살 돋아나오려는 거 아녜요? 봄 되니깐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 트려고 가려울 거예요, 아저씨. 너는 굴다리 밖으로 나오면서 올봄에는 저 아저씨에게 미끈한 종아리가 진짜로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나도 약방에 들러야겠다. 그 의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면 테라마이신을 사 먹으라고 했다. 어서 빨리 새살이 돋아나야지.
산불이 타고 있었다. 그것은 굴뚝도깨비를 만난 요전날 밤에 깜깜한 문밖 어둠속에 담뱃불똥처럼 찍혀 있던 붉은 점이었다. 이번에는 붉은 점이 자란다고 할까. 아니, 자란다기보다도 그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옴같이 번져갔다. 불은 이틀 사이 손바닥 크기로 넓어졌다. 큰 산불이었다. 산은 하도 멀어서 푸른 이끼로 덮인 바위처럼 보였는데, 그 뽀송뽀송한 표면에 불이 댕겨진 것이다. (그 이끼 같은 게 사실은 참나무 밀림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밤에 나는 댓돌을 타고 앉아 산불이 옴의 번식력으로 번져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산불은 끈기 있게 먹어들며 거침없이 붉은 자기 터전을 넓혔다. 뻘갱이 산폭도들이 습격해온단다. 낮에도 산불이 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은 온통 타버린 잿더미였는데 그 운동장만이 햇볕에 내다 넌 넓은 광목천같이 희게 표백되어 있었다. 잔모래알들이 햇살을 받자마자 낱낱이 수직으로 되쏘아서 해가 번들거리는 중천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었을까? 뜨겁고 바람기 한점 없는 정오. 고막에 달라붙은 매미 울음소리. 그림자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사물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시간. 그런데 운동장의 넓은 백색은 조용히 유동하며 복판의 흑점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것은 불에 타 죽은 산폭도라고 했다. 미친 짓, 개죽음이라고 했다. 맹목적인 정열이라고 했다. 맹목적으로 타올랐던 끔찍한 불꽃, 그러나 이제 그는 검게 타버린 나뭇등걸처럼 꺼버덩 나둥그러져 있었다. 타버린 숯이었다. 그냥 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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