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에 이사원(李嗣源)이 앵자곡(?子谷, 사수관 서쪽)에 도착하여 그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주상께서 평소 군사들의 인심을 얻었으나 바로 여러 소인들에게 가로막히고 미혹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안중회도 역시 모두 통달할 수 없어서 마침내 주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신은 다만 충성스럽고 진실한 마음으로 폐하를 섬기고 추요(樞要)를 가리는 기밀도 맡고 있는데 지금의 일은 거칠게나마 밝게 알 수는 있으나 옛날의 일에 이르러서는 신이 미치는 바가 못 됩니다. 바라건대 앞선 왕조에 있었던 시강(侍講)과 시독(侍讀), 근래에 설치한 직숭정원(直崇政院)과 추밀원을 모방하여 문학하는 신하를 뽑아서 그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응대(應對)하는 것에 대비하도록 하십시오."

거란주[耶律阿保機]가 발해를 공격하여 그들의 부여성(夫餘城)을 뽑아버리고, 이름을 고쳐서 동단국(東丹國)이라 하였다. 그의 맏아들인 야율돌욕(耶律突欲)에게 명령하여 동단에서 진수하게 하고 인황왕(人皇王)이라 불렀다. 둘째아들인 야율덕광(耶律德光)에게 서루(西樓, 내몽고 파림좌기)에서 진수하게 하고 원수태자(元帥太子)라 불렀다.

신사일(27일)에 거란주인 야율아보기가 부여성(夫餘城, 길림성 사평시)에서 죽자, 술율후(述律后)가 제장과 추장 가운데 제압하기 어려운 사람의 처들을 불러 말하였다.
"나는 지금 과부가 되었는데 너는 나를 본받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 지아비들을 모아놓고 울면서 물었다. "너희는 돌아가신 황제를 생각하느냐?"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황제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하였다. "과연 그를 생각한다면 의당 가서 그를 알현하시오." 드디어 그들을 죽였다.

다른 날에 황상 앞에서 논의하였는데 황상이 누가 재상이 될 만한 사람인지를 물으니, 안중회가 최협이라고 대답하였다. 임환이 말하였다.

"안중회는 아직 조정에 있는 인물들을 상세하게 알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팔린 것입니다. 최협은 비록 명문 출신이나 아는 것이 심히 적습니다. 신이 이미 학문도 없이 재상의 지위를 욕되게 하였는데, 어찌 다시 최협을 기용하여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습니까?"

황상이 말하였다.

"재상은 무거운 책임을 가지는 것이니, 경들이 다시 살펴서 이를 논의하시오. 내가 하동(河東)에 있을 때에 풍서기(馮書記)116를 보니 재주도 많고 학식도 넓어 다른 사람과 더불어 다툴 것이 없었으니 이 사람이 재상이 될 만하오."

서온(徐溫)이 말하였다.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마땅히 실효(實效)에 힘쓰고 허명(虛名)을 버려야 하오. 고씨(高氏)가 당을 섬긴 지 오래되었고 낙양은 강릉에서 떨어진 것이 멀지 않으니 당인(唐人)들의 보병과 기병이 그곳을 기습하기가 심히 쉬우며, 우리는 수군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곳을 구원하기는 심히 어렵소. 무릇 신하 된 사람으로 구원할 수 없고 그로 하여금 위태로워지고 망하게 한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소?" 마침내 그의 공물은 받되 그가 칭신(稱臣)하는 것을 사양하고 그가 스스로 당에 귀부하겠다는 것을 허락하였다.

감국이 교서(敎書)를 내려서 조용사 공겸(孔謙)이 간사하고 아첨하며 궁핍하고 빈곤한 군민(軍民)들을 침해하여 각박하게 한 죄를 헤아려서 그의 목을 베게 하고, 무릇 공겸이 수립한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법령은 이를 모두 철폐하게 하고, 이어서 조용사와 내구사(內勾使)를 철폐하고 옛날 제도에 의거해서 염철(鹽鐵)·호부(戶部)·탁지(度支) 삼사(三司)를 두고 재상 한 사람에게 위임하여 오로지 처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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