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기의 19세기까지 세계체제의 정치경제학과 그것의 산만한 수사학 사이에괴리가 존재해왔다고 주장했다. 제4권에서 우리는 근대세계체제의 세 가지 주요 이념인 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의 발전에 의해서 이 괴리의 극복을 필수적이게 만든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영향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 어떻게 항상 중도적  원칙이자 신조였는지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중도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다른 두 이념을 사실상 중도적 자유주의의 화신(化身)으로 변형시키면서 "길들여 왔는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장기의 19세기의 끝무렵에 중도적 자유주의가 세계체제의 지문화의 지배적인 신조였다는 점을 주장할 수  있었다. - P413

우리는 어떻게 중도적 자유주의가 그 이념을 세 가지 중요한 영역에 부과했는지를 자세히 검토했다.  첫 번째는 영국과 프랑스가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모범 사례로 부각되었듯이, 세계체제의 중심부에 "자유주의 국가"가 창설된 것이었다. 두 번째는 포함에서 배제로 시민권의 원칙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여성, 노동계급, 그리고 종족적/인종적 "소수집단" 등 배제되었던  세 주요 집단들을 언급함으로서 이를 예시했다. 세 번째는 자유주의 이념의 반명이자 지배 집단들이 피지배층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서 역사적 사회과학들의 출현이었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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