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점진적·단계적 통일과정의 진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너무 급속하고 전면적인 통일을 추구해도 평화에 위협이 되지만, 통일을 제쳐두고 평화만을 이야기한다고 평화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담론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평화담론과 결합할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인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재정조달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국방비 감축이 필요하리라는 계산에 멈추어서는 불충분하다.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이를 빌미로 수구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는 복지확대를 위한 정치적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는 사실에까지 미쳐야 하는 것이다.
남북이 함께하는 2013년체제라면 당연히 6·15공동선언과 더불어 9·19공동성명도 복원된 상태를 뜻할 것인바, 이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교류·협력이 꾸준히 증대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협력을 한층 긴밀하고 원활하게 만들 것이다.
눈앞의 과제로는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있다. 이는 기술적인 능력뿐 아니라 관계기관의 신뢰성과 책임성 그리고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 민주주의 및 공정·공평 원칙과 직결된 문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평화의제와의 연결이 각별한데, 북과의 대결 추구가 어느 모로 보나 위험천만이지만 좁은 땅에 그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놓고 군사력이 좀 앞섰다고 일전불사를 외쳐대는 이들의 무모함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런 것이 제대로 문제삼아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정부가 ‘배 째라’고 버티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 가운데 진정으로 합리적이고 원칙있는 보수주의자가 드문 것이 또 하나의 이유지만, 국민들이 아무튼 북측 체제가 나쁜 체제고 북측 당국이 우리 정부보다 훨씬 나쁜 집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인식 자체가 타당하다고 해도 남녘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이 북측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런 엉터리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에게 향상은 없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서로 적대적이고 단절된 사회이면서도 동일한 ‘체제’라고 말할 만큼 쌍방 기득권세력이 공생관계에 있고 양쪽이 나쁜 점을 서로 닮아가며 재생산되는 구조다. 동시에 엄밀한 의미의 사회체제는 아니고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지적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애당초 남북분단을 주도한 현존 세계체제의 패권국을 포함해 수많은 외세가 개입해서 굴러가는 다소 느슨한 의미의 ‘체제’이다. 17
무엇보다 이렇게 나라가 온통 난장판인데도 우선 내 먹을 것 있고 내 집값이나 좀 올라주면 나머지는 알 바 없다거나, 이 나라에 대해 그렇게 말이 많을 거면 이북에 가서 살지 그러느냐고 하면서 지내다보면, 각자의 마음마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황폐한 심전(心田)에서 독재정치와 불공정사회가 자라나고, 자칫하면 짐승 대신에 인간이 대량 살처분되는 전쟁이 터지거나 대규모 재해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87년체제의 기본적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민주화의 성취가 어디까지나 한반도 남녘에 국한된 성취였고 따라서 1953년 휴전 이후 굳어진 분단체제를 흔들기는 했을지언정 ‘53년체제’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그것을 구성하는 국민국가들의 배타적이고 이론상 대등한 ‘주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패권국가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정부상태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 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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