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이사안(李思安, 상주 자사)이 지난해 공궤하는 일에서 부족하였던 것이 있었음을 미루어 생각하여 유주(柳州, 광서성 유주현)사호(司戶)로 깎고 헤어지는 인사말에서 단명원의 능력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단명원이 충성스럽고 근면한 것이 이와 같은 것을 보니, 이사안이 패려하고 오만함이 어떠하였는지를 알겠다."

어떤 사졸이 분발하여 말하였다.
"적은 백향(柏鄕, 하북성 백향현)에서 죽고 패배한 이래
로 우리 진주(鎭州, 하북성 정정현) 사람 보기를 성이 나서 흘겨보듯 하는데, 지금 가서 그들에게 귀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호랑이나 이리의 입 속으로 던져 넣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곤궁(困窮)함이 이와 같으니, 어디에다 몸을 쓰겠습니까? 제가 청컨대 가서 이를 시험해 보겠습니다."

당시에 여러 주의 장리(長吏)들이 대부분 무부(武夫)였는데, 오로지 군사업무에만 힘쓰게 되고 백성들의 일에는 근심하지 않았지만, 서지고는 승주에 있으면서 홀로 청렴한 관리를 선발하여 등용하고 정치와 교육을 닦아서 밝혔으며, 사방의 사대부들을 불러들이고 가산(家産)을 기울여 아끼는 바를 없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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