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변동과정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2007년 현재 널리 퍼져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이 한계에 직면해가고 있으며, 경제적 민주화의 진전 없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절반의 민주화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성취된 정치적·사회적 민주화조차 밑에서부터 잠식될 수 있음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타협에 의해 제정된 1987년 헌법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헌에 참여한 두 세력은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권력은 강화했다.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은 시민사회를 지역주의적으로 분할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각 세력이 분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손에 쥔 집단은 언제나 규율하기 어려운 사회세력, 그리고 다루기 어렵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정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의회권력에 직면했다.

촛불항쟁은 사회적 합의도가 매우 높았을 뿐 아니라 유례없이 대규모 동원을 이끌어낸 운동이다. 그렇게 된 것은, 민주화된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 국가의 물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더불어 참여비용이 아주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와 정면으로 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차지하는 대규모 대중동원이 가능했다. 이렇게 대규모 대중집회가 지속됨에 따라 참여자의 구성은 거의 전 사회 성원을 포괄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압력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양 날개를 펴야 한다. 하나의 날개는 국민국가가 더욱 민주적이고 국민적일 것을 요구하는 투쟁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의 지구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지구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정부의 전복은 통상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따른다. 먼저 광범위하게 축적된 불만이 존재한다. 정당성을 결여한 정부는 통상 경제적 수행성을 통해서 이 불만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그것에 실패한다. 그런 과정에서 특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불만이 조직된다. 조직된 불만이 항의와 집회로 발전하고, 이로 인해 정부와 대중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정부의 무리한 진압은 대중의 투쟁을 더욱 고양하고, 이제 정부는 유화책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많은 양보가 두려워 너무 적게 양보하려고 한다. 실망한 대중의 투쟁은 더 격화되고 전면화된다. 이렇게 투쟁에 나선 대중 앞에서 경찰과 군대는 자신의 친지와 이웃이 어른거림을 발견한다. 진압명령이 작동하지 않고 권위주의 정부는 급격히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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