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를 이전 선거와 대조해보자.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노무현 후보와 저 권영길의 차이는 ‘한강’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했고, 민주당 편에서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고 노골적으로 선전했다. 또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때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도 정상적인 정권교체이며 그의 당선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민주당에 의한 ‘두려움의 동원’일 뿐이며, 남북관계는 보수 후보가 당선되어도 후퇴할 일이 없다고 말했던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민주당의 몰락을 진보정당 약진의 기회로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는 상호 존중이 이루어졌고 갈등과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최소화되었다. 두 당은 동반상승을 시도했고 그것만이 가능한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국민국가 문제를 다룬 저서에서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을 두고 "종족이라는 면에서 거의 또는 완전히 동질적인 인구로 구성된 역사적 국가의 극히 희귀한 사례"1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중·일 가운데서도 이런 동질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반도 주민이 국민국가를 형성하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종족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우리가 70여년 동안 반으로 갈라져 통상적인 국민국가와는 전연 다른 국가 형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례는 국민국가에 대한 모든 논의를 한계까지 몰아간다고 할 수 있다.
시가 의미를 혁신한다면, 개념은 이런 의미를 응축하고 총괄한다. 예컨대 헤겔(G. Hegel)의 ‘인정투쟁’, 맑스(K. Marx)의 ‘잉여가치’, 뒤르켐(E. Durkheim)의 ‘연대’, 베버(M. Weber)의 ‘카리스마’ 같은 개념은 수많은 의미를 불러 모아 응축하고 있으며 사유를 새롭게 전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성된 새로운 의미를 다시 총괄할 수 있는 거점이 된다. 의미의 장을 형성하는 힘을 가진 말, 그것이 개념인 것이다.
요컨대 분단체제론이 구성하는 개념적 단위들인 근대성?세계체제?(동아시아)?분단체제?남북한 사회 등의 연계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이론적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분단체제론으로서는 이런 연계를 더 이론적으로 충실하게 해야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더 개방적으로 다양한 이론과 논쟁하고 교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논쟁의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이 한반도 주민의 삶에 가한 근본적 제약에 주목해왔다. 이 제약은 지정학적이거나 지경학적인 제약처럼 객관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주관성 안으로 범람해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주관화된 제약은 우리의 선호체계에도 관철된다. 이렇게 사회의 구조적 제약의 영향 아래에서 선호가 그것에 맞추어 변경된 경우를 "적응적 선호"(adaptational preference)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해방 후 한반도에 수립된 두개의 국가인 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는 분단체제의 하위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위체제인 분단체제와 하위체제인 한국사회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상위체제가 하위체제에 대해 갖는 결정력은 하위체제가 상위체제에 대해 갖는 결정력보다 큰 법이다. 하지만 상위체제의 결정이 하위체제의 구체적 형태를 세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상위체제는 하위체제의 가능한 형태와 불가능한 형태의 경계를 확정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한정(limitation)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87년체제론이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체제 재편이든, 민주주의의 위기이든, 6·15공동선언 이후 형성된 분단체제의 형태 변화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든, 이런 상황을 체계적으로 조망할 능력을 입증하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나는 87년체제의 궤적을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불가피하게 축약적일 이 논의가 자임한 과제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 특히 2007년 봄 내내 진행된 ‘진보논쟁’에서 드러난 몇가지 편향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촛불항쟁과 관련해서는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뒤에 좀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촛불항쟁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거의 일체화되다시피 하는 항쟁에서는 특정 집단의 동원 맥락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 정보통신기술의 활용능력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정보통신기술 활용, 예컨대 휴대전화나 인터넷의 활용은 양적으로 남성에게 별로 뒤지지 않을뿐더러 질적으로는 더 농밀하다. 남성들은 정보통신매체에 도구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성들은 그것을 친밀성의 소통매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예로 든다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동호회 활동에 훨씬 열심히 참여할 뿐 아니라 더 내밀하게 교류한다. 촛불항쟁을 통해서 ‘82cook’이나 ‘소울드레서’ 같은 여성 중심의 인터넷 동호회들이 보인 정치적 활동성은 단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이 먹을거리라는 좀더 여성적 의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보여준 것은 축적된 문화적 능력, 즉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능력이 정치적 자기계몽과 결합할 때 어느 정도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87년체제를 통해서 개혁진영은 보수적 헤게모니에 굴복하여 ‘극복 없는 적응’에 경사될 때가 많았고, 진보진영은 ‘적응 없는 극복’을 외쳤을 뿐이다. 그 결과 대중을 극복 없는 적응의 길로 내몰았다. 이 궁지에서 벗어나 극복/적응의 이중과제를 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대중이 모순적이고 갈등적인 이 체제와 그 체제의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극복하는 길, 극복을 성취하는 적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촛불항쟁은 지금 그렇듯이 87년체제의 보수적 재편에 제동을 거는 것에서 더 나아가, 87년체제를 민주적으로 재편함으로써 긴 교착의 상태를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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