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쭤린의 죽음은 당시 관동군 고급 참모였던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대령)가 주도한 일이다. 그는 장쭤린을 제거하고 장쉐량을 내세워 만주를 장악하려 했다. 열차를 폭파한 것은 조선 경성에 주둔한 제20연대 소속 일부 장교와 공병들이었다.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철도였다. 만주에서 철도는 크게 남만주의 남만주철도와 북만주의 중둥철도 그리고 베이징과 펑톈을 연결하는 징펑철도로 나뉘었다. 그중에서 남만주철도와 중둥철도는 각각 일본과 소련 수중에 있었다. 청나라 말기 영국에서 차관을 빌려 1912년에 개통한 847킬로미터의 징펑철도만이 중국의 국유 철도였다. 일본은 남만주철도를 조선과 연결하는 한편 꾸준히 지선을 부설하여 만주 구석구석까지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동3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철도가 조밀하고 근대화의 속도 또한 빨랐다. 그러나 장쭤린 처지에서 반드시 반길 일만은 아니었다. 만철 세력이 확대될수록 자신에 대한 통제 또한 강화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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