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학사 백거이가 말씀을 올렸다. "재상은 신하 된 사람의 최고의 자리이니 깨끗한 명망과 큰 공로를 갖지 아니하면 응당 주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 배균에게 제수하니 밖에서는 논의가 이미 분분한데 오늘 또 왕악에게 제수하면 왕악과 같은 무리가 모두 희망을 가집니다. 만약 그들에게 모두 주면 법도는 크게 무너지고 또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며, 주지 않으면 후대하고 박대하는 차이가 생겨 원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요행히 문을 한 번 열어 놓으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두황상이 대답하였다. "제왕 된 사람은 위로는 천지(天地)와 종묘를 잇고 아래로는 백성과 사방에 있는 야만인을 어루만지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걱정하고 부지런히 하니 본래 스스로 여가를 가지고 스스로 즐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하에는 몫이 있고 기강에는 순서가 있으니, 만약 천하의 현명한 인재를 신중히 뽑아서 그에게 일을 맡기고, 공로를 세우면 상을 내리고 죄가 있으면 형벌을 내리며, 뽑고 채용하는 것은 공적(公的)으로 하고 상을 내리거나 형벌을 주는 것은 신용을 가지고서 하면 누가 힘을 다하지 않겠으며 어찌 구한 것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밝으신 주군은 사람을 찾는 데에서 수고하고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에서 즐기니 이것은 우순(虞舜)이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으면서 잘 다스려질 수 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치란(治亂)의 시작에는 반드시 싹과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언(直言)하는 길을 열고, 보고 듣는 것을 넓히는 것은 치세의 싹입니다. 아첨을 달게 여기고 가까이에 있는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려지는 것은 난세의 현상입니다. 옛날부터 임금은 즉위한 초기에 반드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인사를 갖게 되는데, 인군이 만약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을 내리면 군자는 그 도(道)를 즐겨 실행하며 소인(小人) 역시 이익 얻는 것을 탐하니 간사한 쪽으로 돌아서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상하의 뜻이 통하고 그윽하고 먼 곳에 있는 사정도 전달될 것이니 치세를 없애려 하여도 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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