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이 생각하는 "다시 개벽" 은 대단한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말랑말랑하고 깨인 의식을 지닌 민중의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글가사는 수운이 애초로부터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양식이다. 이러한 수운의 깨인 의식은 동학을 민중의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90년대 동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전국적 저력의 원천은『동경대전』이라기보다는 『용담유사』라고 보아야 한다. -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