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李正己, 본명은 李懷玉, 平盧절도사)가 군사를 파견하여 서주(徐州, 강소성 서주시)의 용교(甬橋, 안휘성 숙주시)·와구(渦口, 안휘성 회원현)를 막았고,
양숭의는 양양(襄陽)에서 군사를 막으니 운송로는 다 끊어졌고 인심은 떨고 두려워하였다. 강·회(江·淮)의 진봉선(進奉船) 천여 척이 와구(渦口)에 정박하였으나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근래에는 큰 것에 힘을 쓰고 싸움을 즐기면서 성공과 실패를 돌아보지 않아서 집안이 멸망하고 몸이 도륙된 사람은 안록산과 사사명, 이들입니다.

12월 정축일(29일)에 이희열은 스스로 천하도원수(天下都元帥)·태위·건흥왕(建興王)을 칭하였다. 이때에 주도 등은 관군과 서로 대치하기를 몇 개월을 계속하여 관군은 탁지(度支)가 식량을 제공하고 여러 도(道)가 군사를 늘려주었으나 주도와 왕무준은 고립된 군대로 깊이 들어가 오로지 전열에게 공급해주기를 바라보니 주객(主客)이 날로 더욱 곤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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