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유럽 1945~2005 - 1 전후 유럽 1945~2005 1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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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유럽이 분열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오히려 이 시기(1947년) 스탈린의 실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스탈린은 통합된 독일이 중부 유럽의 허약한 중립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중부 유럽에서 스탈린은 1945년과 이후 몇 년 동안 비타협적인 완고함과 대결 전술로 유리한 상황을 망쳐 버렸다. 스탈린이 독일인의 분노와 절망이라는 과실이 자신에게 굴러 들어올 때까지 독일이 붕괴하도록 내버려두기를 원했다면, 이는 중대한 오산이었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2005 1>, p179/706

토니 주트의 <전후 유럽 1945~2005 1>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처리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과정 안에 이미 오늘날 유럽 문제의 씨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얄타회담을 통해 독일 영토의 상당부분을 폴란드와 소련에 할양시키며 독일을 약소국을 만들려 했던 소련의 의도는 프라하의 쿠데타를 계기로 서구세계의 경계를 유발시킨다. 때마침 일어난 한국전쟁(1950)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출범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 알사스의 철강과 루르의 석탄을 긴밀하게 결합시켜야 했던 프랑스-독일의 공동 이해는 새로운 유럽연합(EU)을 필요로 했으며 모델은 베네룩스3국이 되었다 . 영국은 이에 대해 반대할 명분은 없었으나, 국가 위의 초법적 기구가 대륙에 있다는 사실은 영국인들의 정서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소련 역시 동유럽공산화 과정에서 파르티잔 출신의 티토와 대립각을 세우며 유일한 공산주의 영도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같은 시기 중국공산당의 마오쩌둥은 중국을 석권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전후 유럽의 처리 과정을 통해 우리는 브렉시트(Brexit), 나토(NATO) 확대와 이에 대한 러시아의 경계, 전쟁위협을 통한 추축국들의 재무장이 합리화되는 과정을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전후 유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결코 멀리 있는 역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전후 유럽 1945~2005 1>의 상세 내용은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자...

북대서양 조약 기구는 1949년 협약에서 완벽한 형태로 출현하지는 않았다. 1950년 봄 서유럽을 현실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독일의 재무장이었는데, 미국은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다. 독일의 재무장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스탈린의 예기치 못한 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실로 최근 유럽사의 윤곽은 매우 달라 보였을 것이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2005 1>, p207/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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