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왕(勃海王) 대조영(大祚榮)이 죽었는데, 병진일(27일)에 그 아들 대무예(大武藝)
에게 명령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5월 초하루 기축일에 일식이 발생하였다. 황상은 흰옷을 입고 변하기를 기다리며 풍류를 그만두고 맛있는 음식을 줄이고, 중서·문하에 명령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를 살피고, 배고파서 고달픈 사람들을 진휼(賑恤)하고 농업에 힘쓸 것을 권유하도록 하였다.

임자일(29일)에 칙서를 내려서 모든 역역(力役) 중에서 군부(軍府)보다 무거운 것이 없기 때문에, 한 번 위사(衛士)가 되면 60가지의 의무가 면제되고 있지만, 의당 그 연령과 기한도 단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바꾸어가면서 그것들을 하게하였다.

장열이 역사를 편수하면서 그것을 보고 오긍이 한 짓을 알아채고는 속이면서 말하였다. "유오(劉五, 유지기)와는 특별히 서로가 빌리지 않았을 터인데!"
오긍이 일어나면서 대답하였다. "이것은 저 오긍이 한 것이고, 사초(史草)에 모두 있는 것이니 명공(明公, 장열)으로 하여금 죽은 사람[유지기]을 굽히거나 원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얼굴색이 변하였다. 그 후에도 장열은 비밀리에 오긍에게 몇 자를 고치도록 요청하였으나, 오긍은 끝내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만약 장공(張公)의 요청을 좇았다면 이 사책은 직필(直筆)한 것이 못되니, 어찌 후세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겠습니까?"

9월 병술일(6일)에 황상이 재상인 신하들에게 말하였다."《춘추(春秋)》에는 상서(祥瑞)로움
은 쓰여 있지 않고 오직 그것이 일어난 연대만이 기록되어 있다." 조서를 내려서 지금부터 주현(州縣)에서는 다시는 상서로움을 상주(上奏)하지 말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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