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감옥에 갇힌 죄수는 대부분 극단적인 판결을 받고 있지만 도로에서 논하는 것은 혹 올바르다고 하고, 혹 잘못되었다고 하니, 폐하께서는 왜 그들을 모두 불러서 만나보지 않고 스스로 그들의 죄만 꾸짖습니까?

죄가 실제로 있는 것이면, 분명한 형벌을 드러내어 알리시고, 남발된 것이라면, 옥리(獄吏)를 엄하게 혼내시어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복종하게 하여 사람들은 정치와 형벌을 알게 하는 것이 어찌하여 지극한 덕(德)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다조의 집안은 대대로 말갈족(靺鞨族)의 추장이었는데, 전쟁의 공로로 들어와서 숙위(宿衛)할 수 있었다. 흑치상지는 상으로 하사품을 받을 때마다 모두 장교와 사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사가 상해를 입히자 관속(官屬)이 그에게 볼기를 치는 형벌을 주라고 요청하니, 흑치상지가 말하였다. "어찌 개인의 말 때문에 관병(官兵)에게 볼기를 치겠는가?" 끝내 묻지 않았다.

권력은 신하들에게서 말미암아서 살피고 신중한 방법이 되지 아니하여, 만약 원통함이 넘쳐도 폐하께서 어디로부터 알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구품(九品) 관리가 명령을 오로지하여 심문하고 조사하며 죽이거나 살리는 칼자루를 조정하며 군주의 위세를 훔치게 되어, 규찰하고 심문하는 일은 이미 추관(秋官)에게 있지 않게 되었으며, 살펴서 심사하는 일은 다시는 문하성(門下省)을 거치지 않아도 되어, 나라의 이로운 기구를 경솔하게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으로써 아마도 사직의 화가 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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