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우리 집안은 불행하게도 친척들 사이에서 자주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과거에는 고양공주와 방유애가 반란을 모의하더니 지금에는 으뜸가는 외삼촌이 다시 그러하였소. 짐으로 하여금 천하 사람들을 보기가 부끄럽게 하는구려."

백제는 고려가 원조할 것을 믿고 자주 신라를 침략하였는데, 신라왕 김춘추(金春秋)는 표문을 올려서 구원하여 주기를 요구하였다. 신해일(10일)에 좌무위(左武衛)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神丘道)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좌교위(左驍衛)장군 유백영(劉伯英) 등을 인솔하고 수군과 육군 10만으로 백제를 정벌하게 하였다. 김춘추를 우이도(?夷道)행군총관으로 삼아서 신라(新羅)의 무리를 거느리고 그와 세력을 합치게 하였다.

백제는 옛날에 다섯 부(部)를 가지고 있었는데, 37개의 군과 200개의 성, 76만 호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조서를 내려서 그 땅에 웅진(熊津) 등 다섯 개의 도독부
를 설치하고 그들의 추장을 도독과 자사로 삼았다.

왕문도는 바다를 건너다가 죽으니, 백제의 승려인 도침(道琛)과 옛날 장수였던 복신(福信)이 무리를 모아서 주류성(周留城, 한산성)을 점거하고 옛날 왕의 아들인 부여풍(夫餘?)을 왜국(倭國)에서 영접하여서 그를 세우고 군사를 이끌고 유인원을 부성(府城)에서 포위하였다.

주상께서 고려를 멸망시키고자 하니 그러므로 먼저 백제를 주멸한 것이고 군사를 머물게 하여 이를 지켜서 그들의 심복들을 제압해야 한다. 비록 남아 있는 야만인이 가득하여 배척하고 지키는 방비도 아주 엄하다 하더라도 의당 무기를 벼리고 말에게 먹이를 주어 그들이 뜻하지 않을 곳을 치면 이치로 보아 못 이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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