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오일(28일) 밤 이경(二更)40에 황제가 비밀리에 제장을 소집하여 군사를 이끌고 귀환하게 하니, 군사물자·기계(器械)·공격용 도구가 쌓인 것이 마치 언덕이나 산과 같았으며, 군영의 보루와 장막(帳幕)은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여지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모두 버리고 갔다. 무리들의 마음은 흉흉하고 두려워하여 다시 부대별로 구분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길로 분산되었다.
지금 저 이밀이 바른 말을 하고자 하나 오히려 두 사람의 뒤를 좇게 될까 두려우며, 아첨하며 생각을 따르는 것은 또한 저 이밀의 본 의도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군사를 일으킨 이래로 비록 다시 빈번하게 승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군과 현에 이르러서는 아직 좇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도에서 지키고 방어하는 것이 오히려 강하다고 하나 천하의 구원병이 더욱더 도착하고 있으니, 공은 마땅히 몸을 던져 힘써 싸워서 일찍이 관중(關中, 섬서성 중부)을 평정해야 하는데 자주 일찍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는데 이르렀으니, 어찌 넓지 못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십니까?"
양현감이 웃으면서 중지하였다.
가을, 7월 계축일(17일)에 거가가 회원진(懷遠鎭, 요녕성 요중현)에 이어졌다. 당시 천하는 이미 혼란해졌고, 징발된 군사는 대부분 기약한 날을 지키지 못하거나 도착하지 않았으며, 고려 또한 피곤하고 피폐하였다.
봄, 정월 정축일(2일)에 조서를 내려서 천하의 군사들을 징소하여 탁군(?郡, 북경시)에 집결하게 하였다. 처음으로 백성을 모집하여 ‘교과(驍果)’라고 하고 요동(遼東)의 옛 성을 수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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