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 고원(高元)이 말갈족(靺鞨族)의 무리 1만여 명을 인솔하고 요서(遼西)을 노략질하니, 영주(營州, 총사령부는 營州, 요녕성 조양시) 총관 위충(韋沖)이 이들을 쳐서 도망하게 하였다. 황상이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고, 을사일(4일)에 한왕(漢王) 양량(楊諒)과 왕세적(王世積, 상주국)을 나란히 행군원수(行軍元帥)로 삼고 수륙(水陸) 30만명을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하도록 하였는데, 상서좌복야 고경(高?)을 한왕(漢王)의 장사로 삼고 주라후(周羅?)를 수군(水軍)총관으로 삼았다.

6월 병인일(27일)에 조서를 내려서 고려왕 고원의 관직과 작위를 없애도록 하였다. 한왕 양량의 군대는 임유관(臨?關, 하북성 무녕현 동부)을 나갔는데, 물이 불어나는 상황을 만나서 군량 운반이 이어지지 않으니 군대 내에는 먹을 것이 모자라게 되고 다시 유행병을 만났다. 주라후는 동래(東萊, 산동성 내주시)로부터 바다에 떠서 평양성(平壤城)으로 향하였으나 역시 바람을 만나 배들은 대부분 표류하고 물속에 빠졌다.

백제왕(百濟王) 부여창(扶餘昌)이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받들어 군대의 안내자가 되기를 청하니, 황제가 조서를 내려서 타일렀다. "고려는 죄를 알아 복종하였고 짐은 이미 그를 사면하였으니 정벌할 수는 없다."
그 사신에게 후대하면서 그를 보내었다. 고려는 자못 그 사실을 잘 알고 군사를 가지고서 백제의 영토를 침략하고 노략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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