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탁지상서인 장손평(長孫平)이 주문을 올렸다. "백성들 가운데 매년 집에서 내는 속맥(粟麥)이 1석 이하인 사람들은 빈부(貧富)의 차이를 두며, 이를 해당되는 사가(社家)52에 쌓아두고 사사(社司)의 검교(檢校)에게 맡겨서 흉년에 대비하도록 하는데, ‘의창(義倉)’이라고 이름을 지으십시오." 수의 주군이 이를 따랐다.

진주(晉州, 산서성 임분시) 자사 황보속(皇甫續)이 곧 관부(官府)로 나가려고 머리를 조아리며, 진(陳)은 세 가지의 멸망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그 상황을 묻자, 말하였다. "큰 것이 작을 것을 삼키는 것이니, 첫 번째입니다. 도리가 있는 것이 도리가 없는 것을 정벌하는 것이니, 두 번째입니다. 배반한 신하인 소암(蕭巖)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에게 말을 한 것이니, 세 번째입니다. 폐하께서 만약 명령하여 장차 병사를 내보내려 하시면 신은 바라건대 실과 같은 가는 머리털을 펴는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수의 주군이 그를 위로하고 보냈다.

오만하고 허망한 것은 맑고 빈 것이라고 하고, 인연으로 맺은 인정(人情)으로 공훈을 이루게 하면서 유학(儒學)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가리켜 낡고 조잡하다고 하면서, 사부(詞賦)를 쓴 사람을 군자(君子)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문필(文筆)이 날로 번성하며 그 정치는 날로 문란해지고, 이로서 위대한 성인의 흔적과 규범은 버리면서, 아무 쓸데없는 것을 얽어매어서 유용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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