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19세기의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식민주의‘ 말입니다. 왜 그렇게 자본주의 국가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침략했는가. 유럽인들의 심성 때문인가. 종교와 문명의 전파에 대한 사명을 자각했기 때문인가. 천만에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특히 기계제 대공장에 기초한 생산형태 안에 식민주의에 대한 요구가 들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식민주의는 인간본성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우연한 사건의 결과물도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주의를 품고 있습니다.
내용을 눈여겨보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황과 불황이 단순하게 반복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호황은 점차 드물어지고 시기도 짧아지는 반면 불황과 침체는 더욱 빈번하며 기간 또한 길어집니다. 마르크스가 영국 면직업의 "첫 번째 시기"라고 부른 45년(1770~1815) 간은 공황과 침제 상태가 5년에 불과했는데요. "두 번째 시기"라고 부르는 다음 48년(1815~1863) 동안에는 불황과 침체가 28년으로 늘어난 반면 회복과 호황의 시기는 20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김, 618; 강, 614] 짧게 보면 산업의 반복적 순환이 생명의 순환처럼 보입니다만 길게 보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