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병사를 파견하여 백제(百濟)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배를 당하였다.(p46/92) - P46
무릇 장성(長城)에는 다섯 가지의 이로움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막아 지키는 힘든 일을 그치게 하는 것이 하나이고, 북부(北部)에서 가축을 놓아길러도 노략질을 당하여 빼앗기는 걱정이 없는 것이 둘째이며, 성에 올라가 적을 바라보고 편안한 상태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셋째이며, 쉬면서도 항상 대비하는 것이 넷째이고, 매년 항상 식량을 운송하면서 영원히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이 다섯째입니다.(p18/92) - P18
고구려(高句麗) 왕 고련(高璉) (장수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위에 들어와서 조공하였는데, 또 제(齊)에게도 들어와서 조공하였다. 그때 고구려가 바야흐로 강하여졌으므로 위는 여러 사신의 숙소를 둘 때 제(齊) 사신의 것을 첫째로 하였고, 고구려의 것을 다음으로 하였다.(p19/92) - P19
소자량(蕭子良)이 석씨(釋氏)를 깊이 좋아하여서 유명한 승려를 불러 오게 하여 불법(佛法)을 강론하며 도(道)를 믿는 풍속이 왕성하였는데, 강남에서는 이러했던 적이 없었다. (p14/92) - P14
진수(陳壽)에 의하면 삼한(三韓)에는 모두 78국(國)이 있었는데, 백제(百濟)도 그 가운데 한 나라였다고 한다. 이연수(李延壽)의 《남사》에 의하면 100가(家)가 바다를 건넜는데 점차 강성해져서 나라를 세웠으므로 이런 배경으로 백제라고 불렀다고 한다. 진(晉) 시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침략하여 가졌고,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 두 군을 점거하고 있었다.(p67/92)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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