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혜룡이 말하였다.
"살고 죽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저들이 또한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느냐? 내가 인의(仁義)를 가지고 막고 감싸고 있는데 또한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다.(p28/158) - P28

최호가 말하였다.
"예전 태조가 하늘에 순응하여 천명을 받아 대(代)·위(魏)를 겸하여 부른 것은 은(殷)·상(商)
을 본받았던 것입니다. 국가가 공덕을 쌓아서 마땅히 만억(萬億)년을 향유해야 하는 것이지 명칭을 빌려 써서 이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p40/158) - P40

병오일(20일)에 고구려 왕 고련(高璉)이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위에 공물을 바치고 또한 국휘(國諱)를 하겠다고 청하였다. 위의 주군은 황제의 계보와 휘자(諱字)를 기록하게 하여 그에게 주고, 고련을 도독요해(遼海)제군사·정동(征東)장군·요동군공(遼東郡公)·고구려왕으로 임명하였다. 고련은 고소(高釗)의 증손자였다.(p88/158) - P88

"불교의 교화가 중국을 뒤덮은 지가 이미 4대를 지났는데, 불상과 사탑(寺塔)이 있는 곳이 수천입니다. 최근에 오면서 마음은 들뜬 말초적인 것을 공경하고, 정성을 지극하게 하지 않으며, 다시 사치스럽게 경쟁하는 것을 중하게 여기니, 재목과 대나무, 구리와 비단을 써버리고 없애는 것이 끝이 없는데, 신기(神祇)에게도 관계가 없으며 사람들의 일에도 누가 되니 이것을 막지 아니하면 흘러 다니는 폐단은 쉬지 않을 것입니다."(p91/158) - P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