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눈 아래에서 -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김우영.문옥표 옮김 / 너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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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과 권력이 조르주 발랑디에의 말처럼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신라사회를 신분집단들로 계층화하여 최상위층만이 국가와 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자리를 세습적으로 차지할 수 있게 만든 골품제에 의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p51)... 골품제가 무너진 뒤에도, 그 바탕에 깔린 철학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귀족적 출계집단 모델에 기초한 사회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이 두 가지 힘, 즉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중대한 상호작용은 고려의 역사를 계속해서 귀족적 출계집단의 성쇠와 뒤얽히게 만든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52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 ~ )가 전작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에서 여말선초(麗末鮮初)를 배경으로 신유학(新儒學)의 도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면, <조상의 눈 아래에서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는 신라(新羅)와 조선(朝鮮) 후기까지 분석을 확장해 간다.

본문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앞선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 있었다면,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血緣)에 근거한 엘리트 집단과 이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권력과의 다툼이 있었다고 본다. 다른 계층에게는 배타적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지방에 근거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세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향(鄕)족과 수도에 위치하며 중앙권력과 관계를 공고히 하는 사(士)족. 이들간의 오랜 다툼의 기원을 저자는 신라에서부터 찾는다. 그 사이 왕조 교체와 같은 정치 격변기에 선종(禪宗), 성리학(性理學)과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제시되었지만, 사회적인 관계에 기반한 지배층의 교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음을 저자는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고려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이 말해주듯이, 출계집단들의 역사에는 언제나 운명의 변전이 있었고, 왕조 교체기에는 으레 그들의 부침이 더욱 심했다.(p105)... 놀랍게도 고려시대의 주요 출계집단들 가운데 소수만이 조선 초기에 쇠잔했다.... 규모가 작고 뿌리가 깊지 않은 출계집단들이 잠시 흥했다가 사라진 것에 비해, 규모가 크고 방계가 많은 출계집단들은 다른 분파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면서 ‘족망‘을 보전할 수 있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107

한국에도 상인과 무역업자, 여러 부류의 장인이 존재했지만, 엘리트층이 과거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비엘리트 출신의 경쟁자들은 아무리 부유하고 박식해도 과거제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었다. 더욱이 재산은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단 한번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아가 한국인의 친족 중심 성향으로 인해, 엘리트층과 관료사회가 완전히 일치한 적은 없었다.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조선 후기의 재지 엘리트층에 힘을 실어주었고, 덕분에 그들은 중앙의 정치과정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 뒤에도 높은 사회적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족의 경쟁자들은 비엘리트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엘리트의 사회적 배타성에 의해 생겨난 두 이례적인 사회집단인 향리와 서얼 중에서 나왔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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