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상고 이래로부터 머리를 풀고 좌측으로 옷섶을 여미는 옷을 입었으며, 관과 허리띠의 장식이 없고 물과 풀을 좇아서 장소를 옮기고 성곽과 가옥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사막을 웅장하게 내려다보고 중하(中夏)와 대등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 큰 칭호를 높이 들어 올림은 진실로 민심을 따르는 것입니다."(p15/93) - P15

진북(鎭北)장군 독발구연(禿髮俱延)이 간하였다.
"한 땅에서 편안히 살고 옮기는 것을 무겁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보통 마음입니다. 초랑의 고립된 성에는 먹을 것이 없으며 금년에 항복하지 않으면 내년에 스스로 복종할 것인데 왜 반드시 병사를 많이 죽이면서 그를 공격하려고 하십니까!"(p33/93) - P33

고구려가 숙군(宿軍, 요녕성 북녕시)을 공격하자, 연(燕)의 평주(平州) 자사 모용귀(慕容歸)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p47/93) - P47

양중용은 말하였다.
"지혜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운명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전하와 색사의 관계에 있어서 득실의 이치를 신(臣)은 실로 아직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몸이 사망하는 것을 패배로 생각하고 계략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을 승리로 여긴다면 공손찬(公孫瓚)이 어찌 유우(劉虞)보다 현명하다 하겠습니까!"(p54/93)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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