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이러한 혁명에 대한 면역성은 다음 세 가지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신문, 사법제도,  노동조합을 통한 여론의 힘이 의회에 개혁을  강요하는 것, 둘째는 폭스의 끊임없는 노력의 덕택으로  명문 출신으로서의 특권을 자부하면서도 서민계급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휘그당 내에 자유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셋째로는 온화한 도덕과 일반 서민의 열정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킨 복음주의의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 P611

영국은 지금도 이전과 다름없이 관례로 다스리고 있다. 10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지주귀족은 여전히 관대한 지방 관리로 남아 있으며 군주제, 의회, 그리고 대학은 모두가 중세의 전통과 관습을 충실하게 지켜오고 있다. 영국인의 적응력은 보수주의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오래된 제도는 항상 새로운 추세를 시인하고 허용한다. 영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한 번도 없었다. 역사가 변천하는 시기를 표시하는 일시적인 반란은 있었으나 이것은 큰 바다를 스쳐가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고 1688년의 명예혁명도 서명을 교환한 단순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 P764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나라라는 입지조건과 아마도 풍토의 영향이 로마와의 종교단절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 단절이 오히려 대영제국 형성의 시발점이 되었다. 즉 장기간에 걸친 종교투쟁이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조국을 버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앵글로 색슨의 식민지를 건설한 용감하고 강인한 신교도의 유형을 창조한 것이다. - P7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