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장원은 프랑스의 장원보다 훨씬 더 늦게 성립했다. 그때문에 확실히 프랑스보다 더 철저한 장원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영국의 장원은 프랑스보다 더 오랫동안 농민 보유지의 분할불가 원칙을 고수했으며, 이런 분할불가 원칙은 결국 프랑스보다 더 가난한 다수의 농민계급과 농촌 프톨레타리아를 낳게 되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와 영국 특유의 경제사정으로 말미암아 영국의 영주는 토지의 소작료에 대한 의존도가 프랑스의 영주보다 더 낮았다. - P218

프랑스에서도 영국에서처럼 자본가적 정신이 나타났다. 자본가적 정신에서 토지에 투자해서 그로부터 모든 소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영주계급 내에서 대두하였던 것이다. 그 대신 장원제적으로 경영는 토지재산은 줄었다. 그러나 첫째 이런 자본가적 영주는 관직으로 진출했고, 둘째 그들의 상공업 활동이 요컨대 영국에 비해 저조했다는 점에서 영국의 지주들과는 달랐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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