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임의로 죽을 수 없는 게 사람의 목숨이란 말씀이오. 설령 삶이 죽음보다 고생스러울지라도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게요. 제가 일개 의생으로 칠십 평생 얻은 것이라고는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다 그것이었소. 제 목숨뿐만 아니라 남의 목숨도, 죄가 있다면 사람마다 죄가 있을 것이요, 갚음이 있다면 사람마다 갚음이 있을 것이요, 살아야 할 사람이 죽는 것은 개죽음이요,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짐승일 따름, 사람은 아닐 것이외다. 

치수의 지체, 최치수의 재물, 최치수의 학식, 최치수의 오만, 그런 것이 말할 수 없는 큰 덩어리가 되어 자신은 그 밑에 짓눌리어 자꾸 작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그를 슬프게 했고 걷잡을 수 없게 안정을 잃게 했던 것이다.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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