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년대와 1530년대 촉발된 종교개혁과 뒤이어 일어난 30년 전쟁의 참상은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가문인 호엔촐레른가문에게 프로이센 왕국으로의 도약이라는 영광과 함께 시련을 가져다 준다. 초기의 시련은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경제적으로는 지방 융커, 정치적으로는 지방 권력과의 다툼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는 독일 제국 수립때까지 프로이센의 과제로 주어진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강력한 육군 양성을 통한 폴란드, 오스트리아 지역으로의 외적 팽창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역사안에서 그려진다. 결국 초기 종교 개혁이 가져온 충격이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의 역사 방향을 결정지었음을 「강철왕국 프로이센」에서 확인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뷰에서 살펴 보도록 하자...

권력의 집중을 통해 무질서를 제압해야 하는 필연성에서 국가의 정통성이 나온다는 주장은 근대 초기의 유럽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지만, 브란덴부르크에서 유난히 큰 공감을 얻었다. 여기에 게오르크 빌헬름이 지방의 신분제의회에서 맞닥뜨린 반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철학적인 답변이 있었다. 푸펜도르프는 1672년에, 평화 시에도 전시에도 경비를 들이지 않고 국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군주는 "필요한 비용의 지출에 맞게 시민들에게 각자의 재산으로 기여할 것을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썼다. - P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