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하인츠 몬하우프트.디터 그림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석윤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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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체적 국가관은 국가 조직을 바로 인체와 비교하여 그 용어를 획득한다. 그러나 상태라는 요소는 'status' 개념과도 상응하는 점이 있다. 그 점에서 '헌법 Konstitution, Verfassung' 개념이 '국가 Staat' 개념 발생과 맺는, 근대에까지 이르는 밀접한 연관성을 볼 수 있다.(p14)... 법학적 헌법 개념은 실정법적 규범 질서에 맞추어져 있고, 이 규범 질서는 국가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전반적으로 볼 때 "국가와 국가 헌법은 본질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보완적 개념이다. 법학외적인 헌법 개념은 정당한 지배의 초실정법적 질서나 사회에서의 사실적 권력 관계와 연결되는데, 이때 법학 외적 헌법 개념이 갖는 법학적 헌법에 대한 관계가 오늘날 헌법학이 궁구하는 중심적 문제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0번째 주제는 헌법(Verfassung)이다. 개념사 사전은 역사 속에서 Verfassung의 의미가 고대 그리스어  'Politeia'에 해당하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등 정체(政體)에서 바람직한 '정치 질서'의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상적인 '질서'의 현실적 구현으로 법률 체계인 '헌법'이 나타나면서 이론과 현실 사이에 나타난 괴리도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적법한 질서'는 의학 용어로 표현되면서, 일종의 구조(構造)로 이해되었고, 이는 법률의 유기체적 구조 형성에 이바지하게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Politeia'개념은 처음에는 시민의 권리라는 의미에서 폴리스에 대한 각 개인의 참여를 표현하였다.. 그 다음 국가 속에서 구체화되는 시민의 총체와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 내 시민들이 살아기는 질서와 지배권 행사의 형태를 표현했다. 또한 이 개념은 "시민권"과 "바람직한 민주정"이라는 뜻을 넘어 "적법한 질서" 그 자체라는 의미에서 규범적 요소를 획득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9


 발레리올라가 의학적 constitutio 개념을 내용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러한 개념이 국가 질서를 표현하는 데 유용한 많은 의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개념을 국가 공동체로 적용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리올란 Riolan도 역시 1611년 인체라는 신의 창조물에서 구조적인 요소를 정형화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42 


 근대 초기에 '정치적 질서'는 다시 '국가의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확장되면서, 'Verfassung'는 구체적인 실정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실정법으로 나타난 'Verfassung'은 관념적인 '적법한 질서'로서의 'Verfassung'과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근대 유럽의 정치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등 여러 정체(政體)가 특별하게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질서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실질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의 분화로 이어지게 된다.


 'Verfassung'은 처음에는 국가의 정치적 상태를 포괄적으로 표현한 경험적 개념이었지만, 점차 비非법적인 구성 요소들을 배제하여 법적으로 새겨진 국가의 상태로 집약되어갔다. 'Verfassung'은 근대 입헌주의로의 이행 이후 마침내 국가 통치권의 조직과 행사를 규율하는 실정법과 합치됨으로써 서술적인 개념으로부터 규범적인 개념이 되어갔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02


 로텍은 대상의 관점에서 정의한 헌법 개념 -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규율과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형식과 방식에 대한 규율" - 에 "기본법상 규정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두 번째 헌법 개념을 부가한다. "후자의 개념이 더욱 일상적이며 실용적 수요에 더욱 상응하게 보이는 반면, 실질적인", 즉 정부 형태와 무관한 "규정을 배제하는 전자의 개념은 학문적으로는 더 순수하게 보인다." 실질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에서의 '헌법'을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많은 오랜 논쟁이 해소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50


  이처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에서는 '헌법 verfassung'이라는 용어가 '정치 체제'를 의미하던 본래의 의미에서 '정치 질서'로의 의미 확장을 통해 '국가 공동체의 규범 구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현실적인 법으로 구현되었을 때 발생하는 '실질'과 '형식'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의미 분화로 이어졌음도 알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의미 분화가 이들이 서로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 이론 속에서 화인할 수 있다.


 (슈미트에게) "헌법 Verfassung과 실정 헌법 Verfassungsgesetz은 여기서 동일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슈미트 자신이 이러한 연결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실정적 헌법 개념은 절대적 헌법 개념의 하위 항목에 속하는 한편 실정 헌법은 상대적 헌법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무관하게 병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정 헌법"은 오히려 "헌법을 근거로 비로소" 유효하며 "헌법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의 본질은 법률이나 규범이 아니라", 정치적 통일체의 유형과 형태에 대한 전체적 결단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66


 법적 헌법은 시민적 사회 모델의 관철과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 이 모델은 사회의 자기 조정 능력에서 유래되었고 국가는 단지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자율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만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이 지니는 구조적 문제는 국가를 보장 기능에 국한하고 국가의 활동을 부르주아 사회의 이해관계에 구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 조정 능력이라는 전제가 옳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이후, 다시 국가가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적극적으로 형성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의 임무가 다시 실질화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75


 개인적으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의 역사 속에서 이론과 현실이 다를지라도 이들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개념어 안에 담긴 의미, 의미 안에 담긴 시대 정신, 시대 정신에 실린 희망과 바람이 조금씩이라도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그 움직임이 혁명(革命)은 아니더라도,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관점에서는 의미있는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그 움직임을 진보(進步)라 부르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프리스 Fries에 의하면) 국가의 목적은 그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한 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결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구성원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즉시 불가피한 법률을 통해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적을 규정하고 이에 가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결합 계약이 아니라 법률의 명령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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