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크리스티안 마이어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나인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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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초기에는 한 공동체의 질서를 명명하기 위한 결정적인 기준으로서 작용했던 것이 법(노모스 Nomos)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이러한 노모스적 질서를 긍적적으로 지칭하는 유일한 명칭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에우노미아(Eunomia)'이다.(p14)... 에우노미아의 반댓말은 이 단어의 부정형 명사인 '뒤스노미아 Dysnomia' 또는 '뒤노미아 Dynomia', 즉 "위법적이고, 무질서한 상태"였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기초>,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7번째 주제는 민주주의(Demokratie)와 독재(Diktatur)다. 개념사 사전은 민주주의 제도의 시작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정체 역시 출발은 귀족에 의한 지배 체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정체가 보편적인 정체가 되는 것은 이후 법률에 의한 지배가 '민회(demos)'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이후다. 다만, 이러한 정체(政體)가 최선의 정체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어졌으며, 민주주의를 보는 사상가들의 시각 역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그리고 과두정에서는 소수가)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한 현상에 불과하다. 지배권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 간의 실제적 차이란 바로 가난한 자와 부자의 차이에 있다"(p21)...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폴리테이아"의 원리는 자유와 재산이다. "폴리테이아"에서 지배 집단은 중간층(대개 중갑보병)이다. 이들이 최상의 시민이다._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31


 플라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보다 자유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다. 평등이란 모든 것과 모든 이에 대한 관용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유에 대한 격렬한 요구의 결과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통치자와 피치자의 교체라고 규정한 바로 그 지점에서 이들 간의 상호 동화 또한 이들의 역할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플라톤에게 민주주의적 인간 유형이란 신분에 따라 결정되거나, 아니면 확신이나 신념 혹은 이해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나라, 그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의한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28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중갑보병으로 참전할 수 있는 능력있는 자들에 의한 통치라고 바라본 반면, 플라톤(Platon, BC428 ~ BC348)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민주주의적 인간 유형이 결정된다고 해석한다. 거칠게 요약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도를 뒷받침할만한 현실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플라톤은 선천적인 능력을 강조했다고 정리될 수 있겠다. 이러한 두 철학자의 관점 차이는 실천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관념적인 플라톤 철학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하지만, 이들의 전제 모두가 현실 정치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두터운 중산층'을 배경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식 민주주의와 '덕성(德性)을 갖춘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플라톤식 민주주의는 모두 오랜 기간 언급되지 못했다. 사용되더라도 '민주주의' 라는 용어는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의 전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오랜 기간 유럽에서의 정체는 '군주정'과 '귀족정'이 차지해왔다.


 이론적 논의가 절대적 민주주의에서 대의제적 민주주의로, 또한 소규모의 - 원시적인 민주주의에서 거대한 영토의 문화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로 옮아감에 따라 마침내 민주주의와 귀족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군주정과 헌법정치적인 대립이 약화하였다. 민주주의가 국가 헌법 질서를 구성하는 요소 또는 그 일부분 정도로 파악되면 될수록, 상기한 나머지 정부 형태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일이 점점 더 적어졌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07


 민주주의 개념의 의미는 부정적인 관점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언어 사용 관례를위해서는 버크 Burke와 그의 책을 번역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겐츠 Gentz가 큰 역할을 했다. 이들에 의하면, 인민은 그 자신의 주권자로서 그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자신에게 경솔함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솔함은 다시 권력의 남용을 허락한다는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93


 이러한 '민주주의'가 부활하게 된 시점은 프랑스 대혁명이후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혁명에 시대 정신을 불어넣고,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이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필연성을 강조하면서 이전 민주주의와는 다른 형태로의 제도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헤겔의 세계정신이 민주주의를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면, 토크빌이 말하는 섭리란 바로 민주주의로 향해 나아가고,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소용돌이라는 이러한 보편사적이고 미래 예견적인 이해는 명백히 계몽사상과 프랑스혁명의 후계자 위치에 서 있는 것이었다. 즉, 토크빌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은 강제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긍정해야 하는 것이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45


 1857년 블룬칠리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했다. "근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는 고대 헬레네의 그것과 다르다. ..... 바로 고대 민주주의의 특징, 즉 추첨에 의한 공직과 민회는 선거에 의해 공직이 맡겨지고, 미숙한 민회 대신 선거에 의해 엄선된 대표자 집단을 선호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의 가장 중요한 관계에 있어서 민주주의적 원리는 더 분별력 있고 더 유능한 인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귀족적정인 장점을 통해 개선되었다. 고대의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었고, 근대의 민주주의는 대의제적인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23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서 우리는 '법률'에 의한 지배를 보장받기 위해 출발한 민주주의 제도가 19세기 민족국가 출현과 함께 대의 명분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부활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개념어 사전 속의 역사 속에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지만, 민주주의의 출발과 부활 과정에 있어 정말 데모스(demos)의 의지가 작용했는가. 어쩌면 이것은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진 다른 세력들이 들고나온 '천명(天命)'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는지. 민주주의의 안에 '민중'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 안에 민중이 없다면, 어쩌면 맹자(孟子)가 말한 '왕도정치 王道政治'가 오히려 더 민본(民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운영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라는 생각도 든다.


 나우만은 독일제국의 위대한 군주정은 여러 후진적인(농업적, 산업적, 성직자적 성격을 지닌) "귀족세력들"과의 연합을 포기하고, 이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독일의 민주주의"와의 결합을 추구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낡은 민주주의와도 구별되는데, 이러한 민주주의가 경제와 국가의 현대적인 "거대 경영"에 적절하고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성장하는 "산업적 인민 Industrivolk"에 걸맞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73


 오늘날 무엇이 귀족적 지위를 요구하는가? 지성과 돈이다. 이 둘의 힘이 함께 합쳐졌을 때 그러하지, 지성없이 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하다면 제1차 헌법의 오류가 재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원에는 대지주, 상인, 공장주, 부유한 자영업자, 교수, 의사, 약사, 성직자, 교사 및 공무원의 대표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원은 보통선거권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력 분립이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09


 이 책의 다음 주제는 '독재(獨裁)'다. 책에서는 비상대권(非常大權)을 의미했던 '독재'가 1848년 혁명 이후에는 '스스로 생산된, 권력이 권력으로서 지배하는 자리' 개념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소개된다. 이들의 차이는 짧은 시기 집중된 권력과 영속적인 집중된 권력으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하다. 이같은 의미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위기危機'가 강조되는 오늘날 현대 사회 분위기와도 결코 무관치 않아 보임을 확인하며 책을 덮는다...


 (루소에 의하면) 진정한 독재의 전제 조건은 명백히 비상사태 발생에 있다. 독재는 구체적인 비상사태 방지에만 한정되는 것이 그 본질이며 복구를 염두에 두고 입법 권력을 정지시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독재가 시간적 최소 한도를 넘겨 계속되고, 지속적인 비상사태에 맞서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입법 권력으로 등장한다면 이 독재는 '전제적이거나 무익한 tyrannique ou vaine' 것이다. 이처럼 독재와 폭정 Tyrannis은 루소가 보기에 서로 이웃해 있는 현상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91


 1930년대에는 세 가지의 완전히 다른 독재 개념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이들 간의 최종적 논쟁은 책들이 아니라 마침내 전쟁터에서 완성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의 개념은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데, '독재'를 한 개인 혹은 몇몇 개인으로 이뤄진 한 집단의 비非헌법적인 권력, 즉 반反외회주의적이고 제한받지 않은 권력이라고 부정적으로 파악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1935년까지 레닌이 1919년 제기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프롤레타리아 독재냐"라는 양자택일이야말로 이 시대가 취해야 할 결정적인 선택이라는 명제를 확고히 견지하고 있었다... 파시즘적/민족사회주의적 해석은 다원주의적인 정당민주주의와 이것의 일시적 변형태인 독재와 대립한다고 주장된 특별한 종류의 민주주의에서 자신들 고유의 체제가 갖는 특수성을 찾았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214


요컨대 크세노폰이라는 가명을 썼던 자는 귀족과 인민 사이의 원칙적이고도 깊은 분열을 보았던 것이다. 양 집단의 여러 이해관계와 견해, 그리고 정치 전체는 상호 대립적이었고, 합의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상응하여 민주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본질적인 향상을 보지 못했고, 단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몰락의 길을 걸을 뿐이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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