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파장은 단지 '유신정권 시절 특정 고위층이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사건은 보수 정권이 부동산 특혜로 권력층에게 부富를 이전하고, 그를 통해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낸 '부동산 통치'의 출발점이었다._이완배, <한국 재벌의 흑역사 상> 中


 한국 재벌과 창업주에 대한 책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한국 전쟁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 창업자들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혜안'을 가지고 '통찰력'을 갖고 미래 성장력을 찾아 '성실하게' 기업과 사업을 키웠는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도 인간인지라 소소한 결함, 문제 - 가족사, 협업, 불법 등 -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세운 혁혁한 공(功) 앞에 작은 과(過)일 뿐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이 공식에 따라 창업자, 기업명, 사업 분야만 바꾸면 한 줄 리뷰로 요약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 재벌의 흑역사>는 제목에서 말하듯 '적은 공(功)과 큰 과(過)'를 알기 쉽게 잘 보여준다.


 정주영식 경영의 신격화 이면에는 바로 이런 한국의 어두운 현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무데뽀 경영 신화의 과실은 대부분 정주영 일가가 차지했고, 그로부터 생긴 폐해는 대부분 한국 사회가 감당해 왔던 것이다... 한국 경제 현대사에서 사채 동결 조치는 재벌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정부가 나서서 이처럼 대놓고 기업들의 빚을 탕감해줬는데, 경영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 우호적 환경에서 자본 축적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주영 역시 사채 동결 조치로 홀가분하게 빚을 털고, 1970년대 현대그룹의 재벌화에 성공했다._이완배, <한국 재벌의 흑역사 상> 中


 거대 기업들이 연환계(連環計)로 묶인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 집단인 '재벌'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높고 깊다. 때문에, 이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경제 성장의 주역은 박정희도, 정주영도, 이병철도 아닌 우리들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라는 사실이다. 왕조(王朝) 중심의 사관(史觀)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면서 이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분들이 진정한 경제 성장의 주역이라는 사실이고, 재벌 경영층들은 이러한 경제 성장의 과실을 '유통'했을 뿐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 재벌의 흑역사>의 진정한 교훈은 재벌의 검은 역사보다, 그 밑에 감추어진 숨은 공신들의 노력을 우리가 이해할 때, 생각보다 우리들이 꽤 괜찮은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온전하게 우리 몫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었을 때, 재벌의 흑역사는 막을 내린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다소 엉뚱하지만, 자신을 인정하고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다... 


 삼성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용어는 '관리의 삼성'이다. 그리고 삼성은 '관리의 삼성'답게 전 사회적인 인재 관리에 나셨다. 사회에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삼성의 터울 안에 가둬놓는 잡식 공룡 같은 거대한 식성, 힘 있는 자만이 아니라 '힘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자들까지 모두 포섭하는 무서운 정보력, 삼성이 그 숱한 비리와 편법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무사히 살아남은 이면에는 바로 그들의 대對 사회관리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다._이완배, <한국 재벌의 흑역사 상> 中






이게 바로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이재용과 삼성은, 그리고 한국 재벌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지도층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당장 무언가를 쥐어주기도 하고, 미래의 달콤한 보상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지도층들은 ‘나에게도 언젠가 저런 혜택이 돌아올지도 몰라‘라는 은밀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이 자신을 옭아매 스스로 재벌의 노예가 된다._이완배, <한국 재벌의 흑역사 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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