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법칙은 상황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중용‘ 같은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행동에 대한 가치가 결정난다. 두 문화권은 건축공간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의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간의 성격을 갖는 반면,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갖는다. 이 두 문화는 공통적으로 농업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 문화다. - P56
이 골 무늬는 바다의 파도를 상징한다. 바다의 파도는 계속 움직이지만 ‘선의 정원‘에 그려진 골 무늬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정지된 것이다. 즉 ‘선의 정원‘은 시간이 정지되며 동시에 영원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가능성과 영원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동양 건축의 공간 형태는 기둥과 격자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진다. 서양에서는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공간 안에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등의 상징적 이미지를 추가함으로써 종교적인 공간을 만드는 반면, 동양에서는 비우는 행위를 통해서 종교적 의미의 공간을 만든다. - P142
‘판테온‘과 ‘석굴암은 유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첫째, ‘판테온‘은 비워진 공간에 위로부터 빛이 떨어지는 공간이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인 ‘만신전‘ 이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신의 조각상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공간을 비우고 빛으로 채웠다. 반면에 불교 사찰인 석굴암‘은 불상을 가운데에 두었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판테온‘은 밖에서 보면 건축물로 보이지만, 석굴암은 건축을 마친 다음에 흙을 쌓아 덮어서 건물을 지워 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석굴암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다. - P160
이 유전적 원리는 서양의 근대 건축이 동양 전통 건축과 비슷한공간적 특징을 갖는 것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건축은 동서양을 떠나서 건축이라는 같은 속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건축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른 종이기도 하다. 나는 건축이라는 같은 속에 속한 다른 종의 동서양 건축이 동서양 간의 무역을 통해서 문화 유전자를 교환하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 것이 근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산업혁명을 통한 재료 기술의 혁신도 한 축을 이룬다.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 P208
이렇듯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한자 ‘공(空)‘과 사이라는 뜻의 한자 ‘간(間)‘이 합성된 단어다. ‘사이‘ 라는 것은 두 개의 개체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간(間)‘은 둘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공간을 뜻하는 단어 하나만 살펴봐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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