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세 가지 방식 중의 하나로 - 자연발생적으로 부모 중 한쪽으로부터, 부모 양쪽으로부터 - 가능하다. 그가 자연발생을 믿었다는 것은 그의 수중에 있었던 관찰 방식들로 보건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모 중 한쪽에 의한 무성생식은 식물들에서, 그리고 식물들처럼 고착된 동물들에서 발생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방식이 부모 중 수컷의 기여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암컷이 제공한 물질에 일정한 형상을 각인하는 것이라는 결론 쪽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_ W.D. 로스, <아리스토텔레스>, p160
자연발생설은 고대는 물론 중세 말기까지도 널리 신봉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조를 시켜도 습해지는 것이나 습하게 해도 건조해지는 것은 모두 동물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잘못된 학설은 16 ~ 17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탐구 정신에 밀려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5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5)는 실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2)의 자연발생설을 비판한다. 근대 과학의 합리주의 영향으로 실험조건을 통제하고, 조건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실험은 논리적으로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파스퇴르의 실험 또한 과학적 합리성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이론을 폐기시키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서 채취하든 소량의 공기는 임의의 침출액 속에서 미생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우선 완전히 투명한 유기물의 침출액을 선택합니다. 이 침출액은 온도가 15 ~ 25도로 유지되면 그 다음날에 완전히 흐려질 만큼 변질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 대단히 변질되기 쉬운 침출액을 플라스크에 일정량 담고 플라스크의 목을 길게 늘여뜨린 다음 액체를 끓입니다.... 지금 이 플라스크의 목을 깨뜨립니다. '슈'하는 소리를 들으셨겠지요. 공기가 세차게 들어가고 있는 소리입니다. 플라스크 안이 진공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플라스크를 봉합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68
만약 자연발생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액체는 변질할 것이고, 변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변질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결과를 말씀드리면 이 플라스크들 가운데 몇 개에서는 미세동물이나 곰팡이가 결코 발생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본래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69
도대체 어떤 경우에 변질하지 않은 플라스크가 제일 많이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먼지가 많은 플라스크가 제일 많이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먼지가 많은 거주지역이나 습기가 많은 저지대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든지, 또는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경우 입니다.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70
그렇지만, 단순히 과학적 합리성 또는 실험이라는 방법만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당대 학자들의 기준에서는 누구보다도 관찰과 사례를 중시했던 학자임을 생각해 본다면, 이를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사상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파스퇴르에게 프라스크와 가열시킬 수 있는 도구,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 현미경 등이 없었다면, 그는 자연발생설을 과연 그처럼 비판할 수 있었을까? 반면, 같은 도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주어졌더라도 그는 같은 주장을 했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강조되어온 사상의 변화 만큼 도구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구의 발전이 가져온 적절한 때(時)와 사상이 만났을 때 비로소 역사가 이루어짐을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