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철저히 서양 중심적인 시각으로 쓰인 책이다. 오시만 제국의 몰락과정을 설명하다 보니 당연히 가장 큰 대외 요인이었던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자 참고한 여러 문헌들과 본문 곳곳에 인용된 당대 정치인들의 일기 및 서신들에서는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스만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보니 오스만 제국의 초상은 마치 유럽 열강들의 선심 덕에 간간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환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_ 앨런 파머, <오스만 제국은 왜 몰락했는가>, p456, 역자후가 中 


 앨런 파머(Alan Palmer)의 <오스만 제국은 왜 몰락했는가>는 옮긴이의 말처럼 철저하게 유럽의 시각에서 바라본 제국의 몰락사다.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공식적으로 해제된 오스만 제국. 제국이 이와 같이 붕괴하게 된 원인을 저자는 성(聖)과 속(俗)의 대립으로 바라본다. 

 

 많은 도전들을 극복하며 살아남았던 오스만 제국이 종국에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술탄제와 이슬람교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한 논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스만 제국의 근저에 깔려 있던 종교적인 성격은 제국의 장점이자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서유럽의 혁명기 동안 중앙집권정부라는 새로운 개념이 오스만 제국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 후 세속 정치가들은 종교 성직자들이 집요하게 고집하고 있던 특권들을 점점 잠식해 갔고 징병제나 의회와 같은 서구적인 제도들이 오스만 제국에서도 실행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탄들은, 유럽과 아시아 영토 모두를 보존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속세와 종교계 모두의 수장이기를 원했다.  _ 앨런 파머, <오스만 제국은 왜 몰락했는가>, p449


  종교계와 세속계의 대립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16세기 대항해시대와 함께 밀려드는 신대륙에서의 은 유입이 제국의 경제구조를 흔들었고, 이미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는 제국은 붕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20세기 초반 대한제국의 강제병합이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저자의 이러한 논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 학계에서 하렘 정치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역사가들일지라도 17세기 중반 제국이 쇠퇴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들은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이 당시 적어도 여섯 가지의 만성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제노바와 라구사(두브로브니크) 출신의 상인들이 페루에서 가져온 싸구려 은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 결과 기초 식량가는 3배로 인상되었다. 피라미드식 구조의 티마르 조세 징수제도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으며 아나톨리아에서는 인구폭발로 인해 산적이 횡행하였고 초만원이 된 여러 도시들에서는 파괴적인 화재가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쟁 수행 방법과 정복지 통치 방식을 옛 것 그대로 고수하려는 완고함과 1536년부터 유럽 국가들과 체결하기 시작한 '특권협정 Capitulations'도 위의 현상들과 함께 당시의 문제점들로 지적된다....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제국의 이러한 징조들을 당대의 술탄의 신민들이나 외국의 관찰자들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_ 앨런 파머, <오스만 제국은 왜 몰락했는가>, p21 


 성(聖)과 속(俗)이라는 서양 중세의 정치 구도 형태를 그대로 대입해서 분석하는 관점은 이슬람 문화만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역사의 도식에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강제로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은폐된 제국주의 시대의 중동을 향한 유럽 열강들의 침탈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은 역사의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그 뜻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