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이 철학을 연구하며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것은 철학을 모든 개별 학문의 이론적인 토대가 될 수 있도록 개혁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과제를 '철학은 그 본래의 목적상 가장 엄밀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때의 엄밀성은 다름 아니라 불분명한 가정이나 미심쩍은 가설은 어떠한 것이든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28 


 하이데거가 보기에 종래의 철학은 존재를 늘 존재자처럼 다루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다 존재자, 즉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존재자들이 '있는 것'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존재', 즉 '있음'이 어떤 식으로든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는 '존재'를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해 주는 어떤 것'으로 이해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존재'를 '어떤 것'으로 보면, 그것은 다시 존재를 존재자처럼 보는 것은 결국 존재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접근 방식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그는 '은폐'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31


 현상학의 두 거장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1859 ~ 1938)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의 사상을 다룬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는 이성(理性, reason)으로 대표되는 근대 유럽 문명과 과학 기술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서로 다른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엄밀한 학문'으로 대표되는 후설의 사상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후설이 생각하는 바는 매우 명료하다. 즉, 토대가 되는 학문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토대가 되는 학문이 언제든 거짓으로 판명날 수 있는 판단들로 이루어진 체계라면, 그 학문을 기초로 해 세워진 또 다른 학문들의 체계 역시 위태로워지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학문이 토대의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후설은 철학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후설의 학문적 꿈이기도 한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56


 후설은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이성의 한계, 근대성의 한계를 절감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 체계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고, 그 중심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객관성 위에 세워진 새로운 철학. 이것이 후설이 생각한 새로운 철학이며, 현상학이다. 

 

 철학의 새로운 방법과 관련해서 후설은 먼저 '무전제성'이라는 이념을 내세운다... 후설이 말하고자 했던 '무전제성'은 어떤 전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가정은 결코 전제로 삼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p64)... 후설은 대상이 어떤 왜곡도 없이 있는 그대로 주어진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현상'이라고 부른다. 후설의 철학을 현상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67

 

 다만, 후설이 생각하는 객관성은 기존의 객관성과는 조금 다르다. 의식과 대상을 분리하는 기존의 객관성이 아닌, 의식과 대상을 인정하고 이들간의 지향적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해명한다는 점이 후설 현상학의 특징이다. 후설에 의하면 의식과 대상간의 유동적이며 중첩되는 관계가 저마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순수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환원'이라는 방법을 통해 수많은 현상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마치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한 '영원의 상 sub specie aelernitatis' 아래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 같이 순수한 관점에 이르는 것을 후설은 목표한다.


 후설은 학문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되도록이면 주관적인 요소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다양한 관심들과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들 중에 무엇이 가장 근본적이겠는가?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어떤 현상의 의미는 늘 다를 수 있음을 자각하는 태도, 즉 하나의 대상이 각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미 현상'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설은 이러한 태도야말로 참된 의미의 객관성이라고 말한다.(p71)... 후설은 의식과 대상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의식과 대상은 언제나 함께하는 동반자다.. 의식은 언제나 '~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는 대상의 방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상 역시 의식 없이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부른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74


 그렇지만, 과연 인간이 신(神)과 같이 전체를 조망해서 현상으로부터 본질을 추출해 낼 수 있을까. 쿠르드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이 불완전성 정리(Godel's incompleteness theorems)를 통해 증명한 바와 같이 가장 이성적인 학문으로 알려진 수학마저도 그 체계 내에서 증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 또한 불가능하지 않을까. 괴델의 논증처럼 하이데거는 인간(현존재)가 결코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후설과 대립한다.


 후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른바 '순수한 현상'을 아는 상태에 도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그와 같은 관점을 유지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후설의 현상학이 부딪치는 일종의 한계가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순수한' 관점에 도달하기 어렵다면, 후설 현상학의 목표와 이념 역시 좌초되기 쉽기 때문이다. 후설은 그와 같은 관점에  '선험적'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선험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 세계를 마주해서 겪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를 묻는 '태도'를 말한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92


 하이데거는 존재(sein, be)와 존재자(seiendes, , is-ness)를 구별한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고 앴을 때 인식하는 것은 존재자이지 존재가 아니다. 존재가 '0'과 '1', '삶'과 '죽음' 처럼 디지털(digital)적인 것이라면, 존재자는 아날로그(analogue)적이다. 그중에서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구별되는 '현존재(Dasein)'가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는 세계 속에서 그 무엇 또는 누군가와 함께 하며 존재(있음)의 의미를 찾는데, 만약, 현존재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면 불안이 생긴다. 존재와 비존재는 삶과 죽음과 연결되고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 ~ 1980)의 실존철학과 접점을 이룬다.


 모든 학문의 탐구 대상은 존재자들이다. 학문은 존재자들을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존재'가 '존재자'와 다르다면, 존재자를 다루는 학문의 방식으로 존재를 말할 수는 없다. 하이데거가 전통 형이상학을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평한 것은 존재를 존재자처럼 다루는 방식이 결국 존재 자체를 은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p100)..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여타의 존재자들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구별되는 존재자다. 왜냐하면 오직 인간만이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101


 인간이 특별한 존재자인 까닭은 존재의 의미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른다.(p104)... 현존재는 자신에게서 존재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자다. 인간, 즉 현존재를 제외한 그 어떤 존재자도 존재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존재의 특성을 실존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106

 

 인간은 그저 상황 속에 던져진 존재자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그 한계는 인간을 그저 좌절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그 도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삶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순간일 것이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112


 이처럼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는 근대 유럽 문명의 한계라는 공통된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후설과 하이데거의 답을 비교 설명한다. 인식 - 대상의 상관관계로부터 순수한 현상을 보려고 한 후설과 세계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의 문제를 말한 하이데거. 이들의 관계속에서 공자(孔子, BC 551 ~ BC 479)와 맹자(孟子, BC 372 ? ~ BC 289 ?)의 '예 (禮)'가 떠오른다면 너무 무리한 연장일까. 춘추(春秋)시대의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제시한 공자의 주례(周禮)와 사단(四端)인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서의 맹자의 예. 공자의 예는 보편질서라는 의미에서 후설의 선험적 관점과 통한다면, 맹자의 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는 점에서 세계 내에 현존재를 강조한 하이데거 철학과 통하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후설과 하이데거 모두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철학을 발견하게 되는데 후설의 선험적 관점은 <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의 초월성을 이어받은 반면, 하이데거는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사물을 발전시켰다는 인상을 받는다. 결국 또 칸트를 만난 것을 보면, 근대 이후 철학에서 칸트를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후설은 환원이라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이성이 특정한 관점이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상정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후설의 이른바 선험적인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특정한 상황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 상황을 벗어날 길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직면한 냉정한 사실이다. 그는 인간 실존의 이러한 상황을 '세계 - 내 -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106


 후설이 하이데거는 세속적인 주관과 선험적인 주관을 철저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지적하고 그의 철학을 경계한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후설이 보기에 하이데거는 '상황'이라는 사실에 인간을 가두어버림으로써, 모든 상황적 조건을 뛰어넘는 보편타당한 학문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에 바리케이트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후설이 의식을 절대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끌고 가려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원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하이데거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 존재, 즉 현존재를 가장 생생한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_ 박승억,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p120


 <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에 담긴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의 큰 줄기를 잡고, 현상학에 도전한다면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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