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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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비아의 감각으로, 유라시아의 시각으로 서구사를 다시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변방사를 보편사로 추켰던 ‘가짜 사관 Fake History‘을 거두고, 서양사와 유라비아사의 지평으로 서구사를 재조망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지방화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적폐 청산의 일환이다.(p38)

「유라시아 견문 3」은 포르투갈의 리스본부터 중국 심양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견문」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저자는 유라시아 대륙을 다룬 이번 시리즈 중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가능성 발견, 유럽에 대해서는 지난 시대에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길을 주문한다. 그래서,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책에서는 새로운 역사 해석과 새로운 사상이 유난히 강조된다.

교황은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엘리트 프로젝트라고 여겼다. 한쪽은 ‘깨어 있는 시민‘을 양성하고, 다른 쪽은 ‘각성된 노동계급‘을 배양코자 한다. 어느 쪽도 민초들의 삶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오래된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 유물론에 바탕하고 있음도 공통적이다. 그래서 인간을 물질적으로만 이해한다.(p67)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단에 확증을 갖게 된 것이 EU 활동을 통해서 입니다. 만약 유럽의회가 자유민주주의가 도달한 현시점 최고의 기구라고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이념도 아니고 아름다운 체제도 아닙니다. 불행히도, 그리고 매우 불쾌하게도 공산주의와 너무너무 닮아 있습니다.(p291)

저자는 교황 프란치시코와 크로아티아의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입을 빌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한계를 에둘러 비판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사상의 근본에는 물질주의가 자리잡기에 현대의 문제를 타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저자는 독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의 보수주의 속에서 일단의 가능성을 본다.

(독일의 자부심) 근저에는 기독교 민주주의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의 독일을 일군 정당,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다. 기민당은 그저 보수정당이 아니다. 20세기의 잣대, 좌/우로 단정 지을 수가 없다.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결합, 고전 문명과 현대 정치의 융합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바는 한 문명 내에서의 개혁이 아니다. 제약된 공간에서 시간의 융합이 아닌 ‘유라시아‘와 ‘과거 - 현재 - 미래‘의 시공간의 융합을 통해서만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 태어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미 유라시아는 이런 공동작업의 역사가 있다.

유럽의 계몽주의 또한 자가발전, 내재적으로 발전했던 것이 아니다.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마치 뉴턴이 이슬람 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근대 과학의 법칙을 세운 것처럼, 칸트와 헤겔은 중화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근대 철학의 원칙을 이룬 것이다. 유라비아와 유라시아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학상장의 빛나는 결정체였다.(p102)

그러나, 저자가 말한 융합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양 극단에서 배척받는 제3의 길은 과거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하는가. 가야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음은 저자를 통해 던져졌으니,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 찾아야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이 생소하기는 하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알지못했던 신세계를 믿고 싶다. 그렇지만, ‘확신‘ 전에 ‘확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공부하려는 노력이 따라야할 것이고, 이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유고 공습‘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애초 질문에 답이 담겨 있었다. 세르비아는 방편이었을 뿐이다. 밀로셰비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목적은 ‘유고‘에 있었다. 서구식 자본주의도 아니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진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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