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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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지중해 동쪽 연안에 딱 붙어 있는 십자군 국가는 북쪽, 동쪽, 남쪽 삼면이 이슬람 세계로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2백년을 존속했다.... 첫 번째 이유는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의 존재다. 그들은 적은 병력이었지만 모두 정예병으로 구성되었고, 무엇보다 성지에 뼈를 묻기로 서약한 상설 전력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중근동의 십자군 국가가 존속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소는 지금까지 말한 성채의 활용이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3


[그림] Risultati immagini per kingdom of jerusalem map(출처 : https://www.pinterest.es/pin/627126316835249902/)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 1937 ~ )의 <십자군 이야기 2>에서는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과 주변 공국(公國)들이 살라딘(Selahaddin Eyyubi, 1138 ~ 1193)에 의해 붕되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성지를 손에 넣은 이후 예루살렘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정이 사그라들면서, 이슬람과의 전쟁은 현지인의 몫이 된다. 이에 반해,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력은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와 셀주크 투르크 세력은 누르 앗딘(Nur al-Din, 1118 ~ 1174)과 뒤를 이은 살라딘에 의해 통합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자군은 곧 소멸할 듯이 보였으나, 이들은 200백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전쟁을 이어간다. 적은 병력으로 고립된 십자군이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과 저자는 전투집단인 '기사단'과 '성채'의 적절한 활용이 십자군의 전투력을 극대화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렇지만, 저자는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래서 십자군이라고 하면 제1차에서 제8차까지의 원정 외에도 '종교 기사단'과 '성채'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경제력과 해군력을 중요하게 본 연구자는 거의 없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3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전쟁을 종교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 더 많은 욕망이 전쟁의 언저리에 자리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종교적 열정 이외 다른 욕망이 충족되자 전쟁에서 손을 뗀 '기사들'보다는 결과적으로 십자군의 방어에 기여한 제노바, 아말피,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해양력과 경제력을 더 중요하게 보고 이들을 십자군 원정의 주체로 생각한다. 

 

 나는 서구인이 저술한 십자군의 역사는 어떤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순은 그리스도교 십자군 원정의 진정한 원인을 십자가에 서약한 신앙심에서만 찾고자 한 탓에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5 


 십자가에 서약한 바를 이룬 것에 만족하며 귀국한 '십자군 전사'가 단연 많았다는 사실은, '신에 대한 서약이 이루어진 후의 성지'에 만성적인 병력 부족을 초래했다. 그 결과 에데사 백작령을 뺴앗기고 안티오키아 공작령의 방어를 비잔틴 제국 황제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예루살렘조차 빼앗기게 된 것이다. 역사라가라면 이 점을 지적해야 할 테지만, 이걸 지적하면 그들이 지녔던 세속적인 영토욕이나 부의 축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쨋든 신에 대한 서약보다 사욕이 더 지속성이 강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아무리 그것이 인간성의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5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전쟁을 '신의 전쟁'이 아닌 '인간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대의명분 대신 결과로 전쟁의 성격을 평가한다. 이렇게 본다면 압도적인 해운력(해군력)을 바탕으로 바다쪽에서의 포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원한 이탈리아 상인들의 행동이 더 '십자군'에 맞는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림] Siege and sack of Constantinople (1204) (출처 : http://viticodevagamundo.blogspot.com/2012/02/siege-and-sack-of-constantinople-1204.html)


  최근의 연구자들은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가 지중해 동쪽 해역의 제해권을 견지한 것이 십자군 국가의 존속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살라딘이 시리아와 이집트를 통합한 후에도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바다에 이집트 해군이 한 척도 얼씬거리지 못했을 정도이니, 베네치아와 제노바, 피사의 해군이 제해권을 견지한 공헌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교역을 통한 경제활동으로 공헌한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4


  저자의 말대로 분명 이탈리아 해양도시의 해군이 세운 공(功)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결과로 이들을 십자군의 일원 또는 주체로 봐야할까.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 결과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탈리아 상인들은 십자군 전쟁 이전에도 이미 이슬람 세력과 교류하면서 공존(共存)해왔다. 그것은 이슬람 상인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들이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 그것은 경제적 이익에 맞아서였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미 소아시아 지역에서 십자군 왕국을 포위하고 있는 이슬람 편에서는 굳이 보급로를 바다로 할 필요가 없다. 낙타를 타고 운반하더라도 보급은 가능하다.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의 도움이 필요없었겠지만, 포위된 십자군 입장에서는 동지중해에서의 보급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절실한 만큼 당연히 더 많은 운임과 수수료를 제시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탈리아 상인들이 십자군을 돕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누구보다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잘 알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경제능력은 십자군 뿐 아니라 이슬람 세력 증강에도 큰 힘이 되었다면, 이탈이아 상인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 사람들은 십자군의 지배하에 들어온 거의 모든 중근동 항구도시에 자신들의 거류지를 갖고 있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등 공동체는 제각각이었지만, 이 거류지는 십자군 국가의 '경제특구'로서도 기능하고 있었다. 그들의 상선으로 운반해온 무기와 무구(武具)는 항구에 부려진 뒤 근처에 있는 거류지로 옮겨져 창고에 수납된다. 거류지에는 그리스도 교도 기사들만이 아니라 아랍인이나 투르크인 상인들도 그 상품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128


  이미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 1>에서 당대인들이 누가 지배층이 되든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상인들 역시 십자군 전쟁을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 또한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탈리아 상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이탈리아 상인들의 역할이 강조된다면, 거기에 상응해서 그들과 거래한 이슬람 상인들 역시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약하자면, 시오노 나나미가 제시한 십자군의 성공적인 방어 요인 중 하나인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역할은 중립적이거나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방이든 서방이든 당시 사람들의 바람은 몸의 안전을 보장하고 세금을 적게 걷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만 보장해준다면 지배자가 누가 되든 상관없었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1>, p113


 그렇지만, 저자의 관점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기는 어려운데, 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태세전환 때문이다. 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거의 모든 저작에서 공통되는데, 특유의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는 자신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자신을 제외한 전문가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능케 한다. 그같은 역사소설과 역사서의 경계를 적극 활용하는 저자의 모습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러한 모습을 여러 책에서 확인하면서 초기 그의 작품에 빠져들었을 때와는 달리, 점차 저자를 멀리하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마저 소개하도록 하자.


 그러나 나는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또한 이슬람교도도 아니고, 그리스도교도도 아니다. 그래서 애초의 동기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신이 바라시는' 것의 존속에 공헌한 이탈리아 경제인에게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_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 , p205


  그렇지만, <십자군 이야기 2>는 역사서가 아닌 역사 소설로 접근한다면 재밌게 잀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흥미로운 부분은 독자들 각자의 몫으로 넘기기로 하고, 싫은 소리 가득한 리뷰를 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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