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한국 주거의 공간사> 총 3권의 책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근대 이후 양식 변화를 조망한 책이다. 여러 명의 저자 중 유일하게 모든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 전남일 교수는 책의 구성을 [그림]과 같이 설명한다.



                   [그림]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구조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 법률 개정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들춰보게 된다. 역사(歷史)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 그 중에서도 아파트 문제의 기원은 무엇일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 권의 책을 통해 아파트 문제의 기원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아파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욕구의 대상, 도시 생활의 총아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과 간소함은 단연 중산층 핵가족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특징으로 다가왔다.... 고급재료와 시설/설비로 호화롭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는 서구식 생활을 갈망하고 주거를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중산층의 욕구를 잘 반영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6


 오늘날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만큼 많은 아파트가 전국에 지어졌지만, 처음부터 아파트가 인기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당시 서구식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아파트는 낯선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모델 하우스'라는 새로운 판촉전략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드라마와 CF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모델하우스는 70년대 중산층에게 새로운 워너비(wanna be)가 되었다. 마치 80년대 후반 my car 열풍으로 인한 자가용이 폭발적 증가가 되었던 사실을 연상시키는 마케팅의 성공은 아파트 수요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는 마케팅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몇몇 사람들은 단독주택과는 달리 동일 지역에 같은 형태로 많은 양이 동시에 공급되는 아파트의 시장성에 주목하게 된다. 기존의 단독주택이 수공업 제품이라면 아파트는 공장제 제품이었고, 공산품으로서 아파트의 특성에 주목하면서 아파트는 이제 재테크 수단으로 용도가 변경된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아파트 사재기로 돈을 벌었다는 부유층 복부인들의 이야기가 연일 대중매체를 장식하면서부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갑절로 불어나는 아파트 가격은 아직 막대기 하나 꽂지 않은 황량한 벌판으로 사람들을 유혹했고 복덕방에는 웃돈을 주고 청약 통장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8


 아파트가 단순한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자, 수요량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장은 균형을 잃어버렸다. 아파트에 대한 높은 수용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건설회사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이들은 70년대 개발 시대를 맞아 서울 등 대도시에 많은 양의 아파트를 공급하여 해외의 중동건설 붐과 함께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기서 뜻하지 않은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주택 시장은 공공 또는 민간 주도의 아파트, 집장수 집, 건축가가 설계한 일부 고급 주택, 무허가 주택 등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상황의 저변에는 모두들 집만 지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서울의 아파트 분양 신청률은 40 ~ 70 대 1에 이르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아파트 가격은 날이 갈수록 급등했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59


 당시는 주택복권을 발행할 정도로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절실하던 시기였기에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결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성냥갑의 건물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 한국 대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향'에 대한 선호도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1977년 정부는 주택청약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를 본격 시행했다.(p260)... 분양가 규제는 투기 조장 외에도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작용은 도시가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61

 

 1970년대 중반, 같은 판상형 주거동이면서도 폐쇄적인 클러스터를 이루는 ㅁ자형 배치의 잠실아파트단지가 처음으로 계획되었지만 남향선호라는 거주자들의 요구에 밀려 더는 발전된 형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무미건조하고 획일적인 주거동과 남향배치는 한 단지 안에서, 한 지역에서, 그리고 지역을 넘어서 반복/재생산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p274)...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는 상품의 물량이 많을수록, 그리고 대규모일수록 큰 이윤이 남는다는 '규모의 경제논리'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단지계획뿐만 아니라 주거동 계획과 평면계획도 법적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용적률을 달성해야 한다는 경제적 목표에 의해 좌우되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5


 또한, 주변 건물과 구별되는 고층 건물과 단지 내 생활권을 조성하는 아파트 단지의 특성은 아파트 단지와 주변 지역을 단절시켜, 아파트에 사는 새로운 부르주아(bourgeoisie)라는 계급을 탄생시켰다. 같은 지역에서도 춘추(春秋)시대의 국인(國人)과 야인(野人)이 구별되듯 아파트 단지는 지역민을 갈라놓았고, 같은 생활권역에서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졌다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동질감은 특히 아파트 매매 시 가격을 단합하여 자산가치를 지킬 때 잘 나타난다.


 마포아파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로 등장한 이후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계획원리를 지배한 것은 근린주구론(Neighbourhood Unit)이다. 하나의 단지는 독립 생활 환경으로서 그 안에서의 완벽한 편리함을 추구했고, 이렇게 출발한 개념은 '단지 내 편리한 생활'이라는 아파트 생활의 대명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파트단지는 외부로부터는 폐쇄적인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단절된 공간구조를 더욱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중산층 선민의식이라는 아파트 거주자의 사회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3


 수천 년에 걸친 한국 주거의 역사에서 최근 나타난 아파트의 역사는 극히 짧다. 그렇지만, 이전에 나타난 주택들이 대체로 실용성, 안전성 등 주거 목적이 강조되었다면, 상품 가치가 강조된 아파트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아파트 문제는 '아파트 = 재산'이라는 인식으로 재산 또는 신분상승이라는 수직적 욕망과 좋은 거주 환경 확보라는 수평적 욕망이 융합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부동산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면서 해결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 주거의 사회사, 미시사, 공간사의 세부 측면은 아파트라는 주제와는 별도로 리뷰에서 살표보도록 하고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성장기 였던 1970년대에는 전세 끼고 집(아파트)을 넓혀 가는 것이 보편적인 재테크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주택이 남아도는 저출산-고령화시대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여의도 시범아파트 24평에 살다가 80년인가에 신반포 35평 새 아파트로 이사 갔어요. 한 4년 살다가 개포동 우성아파트로 이사했고요. 47평인가? 저는 거기 살 때 결혼해서 분가해서 살았어요. 어머니는 그곳에서 한 7 ~ 8년 살다가 분당 신도시에 입주할 때쯤 개포동 아파트 팔고 60평 아파트를 사셨죠. 지금은 한 3년 전에 수지 80평 아파트를 사서 저희 식구랑 함께 살고 계셔요. 돌이켜 보면 바로 아파트 갈아타기였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재산도 많이 불리셨을걸요?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52


 과거 강남 개발이 거의 완료되던 80년대 말에 지금의 법조단지로 조성된 부지에는 꽃동네가 있었지만, 이들은 강제철거를 당한 후 멀리 떠나야 했다. 이처럼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恨)위에 세워진 서초동 법조단지. 오늘날 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이 곳을 바라보면서 '민(民)위에 군림하는 법가(法家)'라는 현실은 어쩌면 태생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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