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평점 :
[그림] <게르니카 Guernica>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189080884326729862/)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 ~ 1973)의 그림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장시 게르니카 지역 일대에서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스페인 지역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화 진영과 프랑코(Francisco Paulino Hermenegildo Teodulo Franco y Bahamonde, 1892 ~ 1975)의 국민정부간의 3년간 전쟁을 우리는 스페인 내전이라 부른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스페인 내전은 얼핏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전쟁의 성격면에서 우리에게 낯선 전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기원(祈願)은 폭력을 위도적으로 추상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개인적 책임을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아우라를 지닌 대의명분 속에 감추도록 장려하는 그런 분위기가 분명 존재했다.(p730)... 스페인 내전은 나치 정부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인정했듯이, 새 무기와 새 전술의 완벽한 시험 무대가 되었다.(p731) <스페인 내전> 中
스페인 내전은 여러 면에서 한국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외세 개입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술, 무기의 시험대가 스페인 내전이었다면, 종전(終戰) 후 남은 재고 처리를 한 전쟁이 한국 전쟁이기에, 길게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은 각각 스페인 내전과 한국전쟁이 자리한다 할 것이다.
가장 논란거리가 되었던 문제는 외세의 개입이 전쟁에서 결정적 요소였는가 하는 점이다.(p732)... 프랑코를 지지하는 역사가들이 주장하듯이, 소련의 개입이 1936년 11월 공화 진영의 마드리드 수호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가 국민군이 승리하는 쪾으로 전쟁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p733) <스페인 내전> 中
반면, 스페인 내전 결과 프랑코의 반란군에 의해 스페인은 통일이 되었지만, 한국은 분단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의 분단 결과가 저자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 1946 ~ )가 예상한 미래의 스페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 내전의 의미는 우리에게 보다 각별하게 다가온다.
어떤 정부가 집권했더라도 전후 몇 년 동안 스페인은 절망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나타난 모든 것은 그때 어떤 형태의 체제가 등장했는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완전하게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더라면 1948년 미국으로부터 마셜 플랜의 원조를 받았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를 통해 분명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950년경에 경제 회복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권위주의적인 좌파, 즉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섰더라며 스페인은 중부 유럽이나 발칸 반도의 인민공화국들과 비슷한 나라로 1989년 이후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p740) <스페인 내전> 中
<스페인 내전 The Battle for Spain>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리뷰를 통해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Masacre en Corea> (출처 : https://gr.pinterest.com/pin/686095942990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