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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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  Vetus Testamentum 舊約聖書> <에즈라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키루스 임금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가 자기 신전에 두었던 주님의 집 기물들을 꺼내 오게 하였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재무상 미트르닷을 시켜 그것들을 꺼내 오게 한 다음, 낱낱이 세어 유다 제후 세스바차르에게 넘겨주었다. 세스바차르는 유배자들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오면서 이 기물들을 모두 가지고 왔다. <에스라기> 제1장 中


 키루스 대제. <키로파에디아 Cyropaedia: The Education of Cyrus>는 바빌로니아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안샨의 위대한 왕이며 테이스페스의 증손자, 키루스의 손자, 캄비세스의 아들 키루스로 자신을 소개한 키루스 2세 또는 키루스 대제(Cyrus II of Persia, ? ~ BC 530)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으로 그리스인 크세노폰(Xenophon, BC 431 ~ BC 354)에 의해 쓰여졌다.


 키루스는 이들 나라를 지배했다. 그들은 키루스와 다른 언어를 쓰고 나라도 서로 달랐지만, 키루스는 두려움을 심어 주어 광활한 지역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공포로 굴복시켰으며, 아무도 그에게 대적하려고 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를 기쁘게 하려는 욕망을 생생하게 불러일으켜 언제나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었다. 그가 복속시킨 부족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돌아보기란 어려웠다.(p39) <키로파에디아> 中


 야만족들은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 속에서 키루스가 가장 잘 생겼고, 가장 관대했으며, 배우려는 의지가 가장 높았고, 가장 야심찼으며, 칭송을 받기 위해 모든 노고를 견디고 모든 위험을 감수했다고 말한다. 그런 것들은 그가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적, 정신적 자질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페르시아 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페르시아 법의 특징은 공공의 복리를 중시하는 데에 있다.... 페르시아 법은 부적절하거나 부도덕한 그 어떤 것을 처음부터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인다.(p41) <키로파에디아> 中


 <키로파에디아>는 키루스가 이룬 위대한 업적과 함께 그를 만든 페르시아의 교육에 주목한다. 공공의 복리를 우선시하고 이를 위해 강한 신체와 온전한 정신을 갖추기를 지향하는 페르시아의 교육 속에서 우리는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절제를 강조한 스파르타 교육의 결합을 발견한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교육은 광대한 제국을 뒷받침할 관료제 - 제국의 하부구조 - 를 만들어냈고, 여기에 키루스라는 인물의 등장을 통해 페르시아는 주위를 평정할 수 있었다. <키로파에디아>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처럼 키루스가 이룬 업적과 페르시아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제2차 페르시아 전쟁(BC 480 ~ BC 479)까지 겪은 아테네인 크세노폰이 과거 적국이었던 페르시아의 황금시대를 굳이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는 공화정이 다른 형태의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자주 전복되는지를 보았다. 군주정이나 과두정이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자주 무너지는지도 보았다. 절대 권력을 추구하던 개인이 순식간에 몰락하고, 짧은 기간이나마 그 권력을 유지하면 우리는 그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똑똑하거나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p37) <키로파에디아> 中


 <헬레니카 Hellenika>를 통해 펠레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의 참상을 서술한 크세노폰은 아테네(Athenai)의 패배와 30인 참주정(Thirty Tyrants)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이상적인 정체에 대한 고민을 크세노폰에게 던져주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체(政體)에 대한 고민은 크세노폰의 과제만은 아니었다. 같은 시기 또다른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7)은 <국가 Politeia>를 통해 이상적인 정체의 모습을 스파르타(Sparte)에서 찾았다면, 크세노폰은 어디에서 찾았을까. 아쉽게도 <키로파에디아> 내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없다.


 대신 <키로파에디아>는 그 과정인 전제정(專制政)에 대한 결론이 담겨 있다. 거대 제국의 가장 빛나는 치세가 끝나갈 때 제국은 어떻게 붕괴되기 시작하였는가. 


 키루스의 제국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왕국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했다. 제국 그 자체가 곧 증거였다. 제국은 그 경계가 동쪽으로 인도양까지 닿았고, 북쪽으로 흑해, 서쪽으로 키프로스와 이집트, 남쪽으로 에티오피아까지 닿았다. 그렇게 광활한 영토를 하고 있었지만, 제국은 오직 키루스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통치되었다. 그는 백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마치 자식처럼 아꼈다. 그리고 백성은 키루스를 아버지처럼 존경했다. 그러나 키루스가 죽고 나자 그의 아들들은 곧바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고, 도시와 나라들은 반역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했다.(p438) <키로파에디아> 中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의 영광 안에서 제국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 모순이 전제정에서 기원함을 <키로파에디아>에서 밝힌다. 동시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은 전제정이 이상적인 정체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에, 크세노폰은 <키로파에디아>에서 과감하게 페르시아를 비판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제정에 대한 비판이 이상 정체에 대한 해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기에, 이에 대한 답은 다른 크세노폰의 저작 속에서 찾아보는 것으로 미루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나는 내가 이전에 세운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페르시아와 그 속국은 신들을 공경하지 않고, 친척에게 공손하지 않으며, 백성을 부당하게 대하며, 예전에 비해 전쟁에서 용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p443) <키로파에디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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