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형이상학 정초 대우고전총서 16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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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B3 선의지는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p7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6 IV401 최고의 무조건적인 선은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되는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인 한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에서만 생기는, 이 법칙의 표상 자체만이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탁월한 선을 이룰 수 있다. 이 탁월한 선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인격 자체 안에 이미 현전하는 것으로, 비로소 그 행위결과로부터 기대될 필요가 없다.(p9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윤리형이상학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인식의 한계가 있는 인간이 과연 도덕적 법칙에 맞는 존재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해 칸트는 자신의 답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의지'로부터 시작한다. 선의지는 순수한 이성적 존재자의 실천을 지향하는 이성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칸트는 선의지는 필연적인 실천 명령으로 주어지며, 의무로부터 주어지는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B7 우리에게는 이성이 실천능력으로서, 다시 말해 의지에게 영향을 미쳐야 할 그런 것으로 품수되어 있으므로, 이성의 참다운 사명은, 가령 다른 의도에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를 낳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단적으로 이성이 필요했던 것이다.(p83)... B8 선의지라는 개념을, 즉 우리의 행위들의 전체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언제나 상위에 놓여 있어 여타 모든 가치의 조건을 이루는 이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의무 개념을 취해 보기로 한다.(p84)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3 IV399 다른 모든 경우에서와 같이 하나의 법칙이 남는바, 그것은 곧 경향성에서가 아니라 의무에서 그의 행복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의 태도는 본래적인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실천적 사랑은 의지 안에 들어 있지, 감각의 성벽(性癖)에 있지 않으며, 행위의 원칙들에 있지 애잔한 동정에 있지 않은바, 이런 실천적 사랑만이 지시명령될 수 있으니 말이다.(p8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다면, 의무로 행해진다는 것만이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칸트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자연의 다른 사물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선한 것을 선별할 수 있다. 이성적 존재자들은 이러한 '의지'를 가지지만, 동시에 윤리법칙에 종속되어 있기도 하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러한 윤리 법칙이 '명령'으로 주어진다고 보았다.


  B36 IV412  자연의 사물은 모두 법칙들에 따라 작용한다.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만이 법칙의 표상에 따라, 다시 말해 원리들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 내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법칙들로부터 행위하는 능력, 내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법칙들로부터 행위들을 이끌어내는 데는 이성이 요구되므로, 의지는 실천 이성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B37 의지란 이성이 경향성에 독립해서 실천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다시 말해 선하다고 인식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능력이다.(p115)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38 IV413 객관적인 원리의 표상은, 그것이 의지에 대해 강요적인 한에서, (이성의) 지시명령이라 일컬으며, 이 지시명령의 정식을 일컬어 명령이라 한다. 모든 명령은 당위('해야 한다')로 표현되며, 그게 의해 이성의 객관적 법칙과, 주관적 성질상 그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 의지에 대한 관계(즉, 강요)를 고지한다(p116)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에서 명령을 정언적 명령과 가언적 명령으로 나눈다. 정언적 명령이 목적이라면, 가언적 명령은 수단이 된다. 칸트는 정언적 명령만이 윤리법칙, 실천 법칙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천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보편성과 필연성(타당성)이 필요한데, 우리는 명령의 타당성을 즉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명령이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B39 IV414 모든 명령은 가언적으로거나 정언적으로 지시명령한다. 전자는 가능한 행위의 실천적 필연성을 사람들이 의욕하는 (또는 의욕하는 것이 가능한) 어떤 다른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표상하는 것이다. 정언적 명령은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 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런 명령이겠다.(p118)... 행위가 한낱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해, 즉 수단으로서 선하다면, 그 명령은 가언적인 것이다. (반면에) 행위가 자체로서 선한 것으로 표상되면, 그러니까 자체로서 이성에 알맞은 의지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즉 의지의 원리로 표상되면, 그 명령은 정언적인 것이다.(p11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51 IV421 내가 가언 명령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나에게 조건이 주어질 때까지 나는 그 명령이 무엇을 함유할 것인가를 미리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정언 명령을 생각할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을 함유하는가를 즉각 안다. 무릇, 명령은 법칙 외에 오로지, 이 법칙에 적합해야 한다는 준칙의 필연성만을 함유하지만, 법칙은 그것이 제한받았던 아무런 조건도 함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남는 것은 오로지, 행위의 준칙이 그에 적합해야 할, 이 법칙 일반의 보편성뿐이며, 이 적합성만이 명령을 본래 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한다. B52 그러므로 정언 명령은 오로지 유일한 즉, 그것은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는 것이다... 의무의 보편적 명령도,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13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칸트는 이로부터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필연성과 보편성을 모두 갖춘 정언명령을 도출해낸다.


 B66 IV429 무릇 최상의 실천 원리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인간의 의지에 관련한 정언 명령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누구에게나 목적인 것의 표상으로부터 의지의 객관적 원리를 형성하고, 그러니까 보편적 실천법칙으로 쓰일 수 있는 그러한 것이어야만 한다. 이 원리의 근거인즉, 이성적 자연본성은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한다는 것이다.(p147)...  B67 IV429 실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p148)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다면, 도덕법칙이 정언명령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만약 인간이 신적인 존재라면, '의지의 자유'가 언제나 '의지의 자율성'과 일치할 수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B87 IV440 의지의 자율이란 의지가 그 자신에게 (의욕의 대상들의 모든 성질로부터 독립적으로) 법칙인 그런 의지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자율의 원리는 선택의 준칙들이 동일한 의욕에서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으로서 함께 포섭되는 그러한 방식 외에는 아무런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16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97 IV446 의지는 생물이 이성적인 한에서 갖는 일종의 원인성이다. 자유는 이런 원인성의 특성일 것인바, 자유는 그것을 규정하는 외래의 원인들에 독립해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필연성은, 외래 원인들의 영향에 의해 활동하게끔 규정받는, 모든 이성 없는 존재자들이 원인성의 특성이다.(p179)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그렇지만, 인간은 지성과 함께 감성을 가지고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지의 자유'와 '의지의 자율'이 항상 일치할 수 없다. 때문에, 인간에게는 도덕법칙이 필요하며, 이는 당위(當爲), 정언적 명령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자신을 그 아래 세우면서 인격적 존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논지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면,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우리가 선(善)을 직관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감성의 결합을 통해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세계를 알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언명령을 통해 도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에서 말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을 가지고 <실천 이성 비판>으로 나가보자...


  B111 IV454 오성세계의 순전한 성원으로서 나의 모든 행위들은 순수 의지의 자율의 원리에 완전히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한낱 감성세계의 일부로서 나의 행위들은 전적으로 욕구들과 경향성들의 자연법칙에, 그러니까 자연이 타율에 알맞게 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p194)... 자유의 이념이 나를 예지 세계의 성원으로 만듦으로써 정언 명령들은 가능하다. 이 정언적 당위는 선험적 종합 명제를 표상하는 것인바, 왜 그런가 하면, 감성적 욕구들에 의해 촉발되는 나의 의지 위에 동일하지만, 오성세계에 속하는, 순수한, 그것 자체로 실천적인 의지의 이념이 덧붙여지고, 이 의지는 저 의지가 이성에 따르는 최상의 조건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195)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10 IV453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오성세계의 성원으로 놓고, 의지의 자율을, 그 자율의 결과인 도덕성과 함께 인식하되, 그러나 우리가 의무지워져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감성세계에 속하면서 또한 동시에 오성세계에도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p193)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B128 IV463 우리는 비록 도덕적 명령이 실천적 무조건적 필연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하나,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개념화 못함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바, 이것이 인간 이성의 한계에까지 원리적으로 나아가려 하는 철학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p212)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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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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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2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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