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치료법과 논설을 연구할수록 (그 내용이) 경강부회(牽强附會)한 것이어서, 밝히려고 하면 점점 더 어두워지고 바로잡으려 하면 점점 더 잘못되어,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을 보지 못하니 한단(邯鄲)의 걸음을 배우는 사람처럼 망연해하였다. 난서(蘭書) 가운데 난해한 곳이 10 가운데 7에 이르지만, 한설(漢說)에서는 채용할 만한 것이 10 가운데 1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p71)... 사물(事物)에 그것을 시험해보았더니 취하는 것마다 근원에 이르는 것이 명백하여 불을 보듯 분명하였다. 이에 해부의 책을 가져다 그 통설에 의거하여 해부하여 살펴보니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다... 해부(解剖)의 서적이 옿고 한설은 틀렸다. 오직 <영추(靈樞)> 가운데 "해부해서 보았다"라는 글이 있는데, 한인(漢人)도 옛날에는 반드시 해부의 법이 있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이 그것을 전하지 못하고선 다만 찌꺼기만을 믿고는, 고찰할 수 없는 말만을 하면서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끝내 진면목을 알지 못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p72) <해체신서> 中


 스기타 겐파쿠(杉田 玄白, 1733 ~ 1817) 등이 저술한 <해체신서 解體新書> 서문은 한의학 漢醫學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해부와 관련한  한의학 내용을 비판하고, 서양의학의 지식을 취한 이유를 서문에서 설명한다. 우리는 서양의학이 르네상스 Renaissance를 거치면서, 쌓여진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발전해왔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해체신서>의 말대로 전통의학에서는 우리가 취할 것이 없는 것일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황제내경>의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황제내경>으로 표현되는 동양철학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황제(黃帝)가 천사(天師)인 기백(岐伯)에게 물었다. "상고(上古)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백 살이 넘어도 동작이 노쇠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쉰 살만 되어도 동작이 모두 노쇠한데, 시대가 달라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양생(養生)의 도를 잃었기 때문입니까?"(p17) <황제내경> 中


 <황제내경>은 황제와 신하이자 스승 기백과의 문답(問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방법, 양생에 관련한 질문으로부터 음양오행(蔭陽五行)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의학 전반에 관련한 내용이 설명된다. 


 '생명'이라는 것은 바로 생장, 발육하는 활력을 갖고 있는 자연법칙에 따라 발전, 변화하는 모종의 형태를 가리킨다.(p24)... 양생 養生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 및 정서, 음식, 일상생활, 운동 등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같이 화합할 화 和자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다.(p164)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황제내경>은 책 전반에서 조화를 강조한다. 조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기본 원리는 음양오행 사상이며, 이러한 사상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장場이 인체 人體이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행의 성질을 담고 있는 장기 腸器와 정 精, 기 氣, 신 神의 조화가 필요함을 <황제내경>은 강조한다.


 옛사람들은 대자연 속의 모든 사물이 하나같이 금, 목, 수, 화, 토 등 다섯 가지 기본요소로 구성됐고 이 다섯 가지 요소의 성쇠에 따라 대자연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더불어 오행이 사람의 운명에도 영향을 주고 우주만물의 순환과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을 깨달아, 얼마 후 오행 상극과 상생 이론이 탄생하게 됐다.(p38)<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황제내경>에서는 병의 원인을 기 氣를 해치는 것으로 설명한다. 지나친 감정의 소비로 인해 몸을 상하게 되면 균형이 깨져 병이 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평소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중용 中庸의 삶이 필요하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 주행 시 잦은 속도 변속을 하는 것보다 일정속도로 운전 시 같은 양의 연료로 보다 멀리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론의 근거가 될 것이다.


 황제가 기백에게 물었다. "모든 병은 풍,우, 한, 서와 기쁨, 노여움에서 생겨납니다. 기쁨과 노여움을 절제하지 못하면 오장이 손상되고, 풍사나 우사는 몸의 윗부분을 손상시키며, 한사나 습사는 몸의 아랫부분을 손상시킵니다.(p89)... 황제가 물었다. "나는 이미 모든 병은 기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를 내면 기가 위로 오르고, 기뻐하면 기가 완만해지며, 슬퍼하면 기가 흩어지고, 두려워하면 기가 가라앉게 됩니다.(p94) <황제내경> 中


 이처럼 <황제내경>은 오행의 성격에 신체의 각 부분 특성을 대응시키고, 음양을 통해 적정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신체기관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해부학에 근거하여 설명한 <해체신서>와는 차이점을 보인다. 피 血와 관련한 두 책의 설명은 이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면으로, <황제내경>에서는 관계성에 초점을 두는 반면, <해체신서>에서는 작동원리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인체의 시스템은 오장육부를 중심으로 신과 경락의 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삶과 죽음은 신 神, 정 精, 혈 血, 진액 津液, 기 氣, 경락 등에 의해 결정된다.(p30)... 혈과 정, 기는 서로 화생하는 특징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정은 응집돼 거의 움직이지 않고 혈은 혈관 사이를 흐르고 기는 활력이 비교적 강하다는 것이다. 피는 흐르면서 안으로 장부에 영향을 공급한다. 또 밖으로는 형체에 관개 灌漑하는 역할을 한다.(p218)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혈맥(血脈)은 부드러우며 박동하지 않는다. 온몸의 동맥(動脈)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시작하는 곳은 미세(微細)하다. 그것이 동맥의 미세한 곳과 교차하면서, 동맥의 혈액을 받는다. 끝나는 곳은 두 줄기의 대간(大幹)으로, 그곳에서 혈액을 크게 모아 우심실(心之右方)로 들여보낸다. 동맥은 순행(順行)하고 혈맥(血脈)은 역행(逆行)한다.(p284) <해체신서> 中


 <황제내경>과 <해체신서>의 차이는 이처럼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동양의 개방적 세계관과 서양의 폐쇄적 세계관의 차이로 나갈 수 있다. <황제내경>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조화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음양이 상대적 개념이듯,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계절과 때에 맞는 음식섭취와 행동이 있다는 세계관은 상대적이며 유기적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는 개인의 삶 뿐 아니라, 사회윤리로도 확대될 수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황제내경>로 대표되는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나와 자연, 사회가 다르지 않기에, 일이관지一以貫之 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반해, <해체신서>안의 세계관은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세계관이다. 보편법칙과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세계. 이것이 두 책을 둘러싼 배경의 차이가 아닐까. 


 양생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연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사계절의 추위와 더위의 변화에 따라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자연계의 기후 변화에는 특히 주의를 해야하고 봄과 여름이는 양기 陽氣를 많이 보강해야 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음정 陰精을 많이 보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p20)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군주가 현명하지 못하면 12개의 장부가 위태로워지고, 길이 막혀 소통할 수 없게 되어 형체가 크게 상하게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종묘사직이 크게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p31) <황제내경> 中


 건강이라는 개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신체 및 정신,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의 완벽한 상태를 가리킨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은 상태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p64)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이처럼 우리는<황제내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서로 소통하는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에 의한 자연 정복이라는 서구의 가치관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이러한 반대의 입장은 '정신-신체'의 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꿈 dream과 관련헤서 <황제내경>은 신체의 의사표현으로 바라보는 반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는 <꿈의해석 Die Traumdeutung>에서 꿈을 무의식의 작용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체 body의 증상이 정신 mind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우리는 이원론(dualism)의 전형을 확인하게 된다. 


 꿈은 대단히 복잡한 현상이다. 더불어 꿈의 생성 원인 역시 매우 복잡하다... 사실 병리학적 각도에서 보면 많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은 잠복 기간 동안에는 그 증세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더구나 낮에는 대뇌가 활동하고 뇌세포가 항상 흥분 상태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체내에 잠재된 병변이 뇌세포에 전달하는 미약한 자극을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체는 꿈을 통해 사람들에게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p204)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中


 이제는 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활동들이 더 이상 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낮에도 활동하는 무의식적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셰르너의 주장대로 꿈이 아주 다양한 상징을 이용해 신체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면, 우리는 이것이 다분히 성적 충동에 굴복했을 무의식적 공상들의 활동이라는 것을 안다. 이 같은 공상들은 꿈에서뿐 아니라 히스테리성 공포증과 다른 증상들에서도 표출된다. 꿈이 낮의 작업을 이어받아 해결하고 가치 있는 생각들을 직접 밝혀 내는 경우, 우리는 정신 깊숙한 곳에 있는 미지의 힘들이 조력한 징표와 꿈-작업의 활약으로 보고 꿈의 위장을 벗겨 내기만 하면 된다. (p704) <꿈의 해석> 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해체신서>로 표현되는 서양사상과<황제내경>에 나타난 동양사상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배타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때에 맞는 행동과 음식을 섭취해야 할 것이며, 이 경우에는 <황제내경>의 내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우리가 앓아 누운 경우에는 <해체신서>의 지식을 활용한 빠른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맞는 적절한 처방 지혜를 우리가 갖고 있기에 과학 science의 시대에 한의학 韓醫學이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고속도로 주행 시 크루즈(cruise) 기능은 정말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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