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자연책'이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아무리 크게 만든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도 한 권에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서 끝나게 될까? 별자리부터 지구의 핵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지나칠 때마다 궁금했던 동식물, 나무, 풀, 곤충, 강수량,육지, 수역 등을 이번 자연책 작업을 통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p8) <자연해부도감> 中

 

  줄리아 로스먼(Julia Rothman)의 <자연해부도감 Nature Anatomy>은 저자의 말처럼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해와 달, 별부터 시작해서 지구 기후, 우리 주변의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연(自然 nature)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것들의 이야기가 편한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다.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자연해부도감>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2 ~ )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을 떠올리게 하지만, 드로잉(drawing) 중심의 책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비해 다루는 내용도 매우 제한적이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책으로, 이는 저자의 말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나는 뉴욕 도심부인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에 살고 있는데, 우리 집은 프로스펙트 파크 입구에서 가까운 몇 안 되는 건물들 가운데 하나다. 잠깐 바람 쐬는 걸 두고 '자연 산책'라 부르는 것이 지나칠 호들갑일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잠시나마 초록의 자연에 에워싸이는 시간은 내게 더없이 소중하다.(p6) <자연해부도감> 中 


 <자연해부도감>은 저자의 말처럼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생각되지만,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자연해부도감>의 자연이 저자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도시에서 야생(野生)을 아름다운 세계로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43 ~ )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통해 밖에서 바라본 시골이 이상향이 아닌 현실임을 말하듯, 저자가 그린 자연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자연해부도감>을 읽으면서 자연에 대한 느낌을 받기보다, 책의 그림에만 눈이 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자연에서의 현실이란 것을 잘 몰랐던 젊은 시절, 몰래 눈여겨둔 별장지가 있었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전망은 아름다운 아즈미노에서도 각별했습니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살면 구름 위에서 생활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약 당신이 땅값이 싸다는 점에 눈이 멀어 곧바로 사기로 결정하고 말았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 땅값과 비교하면 분명하면 분명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하지만 현지 시세를 감안하면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운 것입니다.(p33)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中


 그런 면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의 <야생화 일기 Thoreau's Wildflowers>에는 자연 안에서 함께 숨쉬며 자연을 바라본 이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연안에서 삶을 발견하고, 저자와 함께 식물을 발견하는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책의 깊이가 한층 깊어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1853년 6월 10일


 우리가 거닐었던 이 멋진 야생 지역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옛 칼라일 길은 양쪽에 야생사과나무 초원과 접해 있다. 사과 나무들은 대부분 어쩌다 씨앗이 날라왔거나 사과즙 찌꺼기를 버린 데서 움이 트는 등 우연히 터를 잡고 제멋대로 자라며, 자작나무와 소나무에 가려져 있다. 이 드넓은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은 열매를 제법 생산하지만 야생에서 삼림수로 자란다. 이곳은 가울에 산책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다.(p187) <소로의 야생화 일기> 中


 <자연해부도감>과 <소로의 야생화 일기>는 같은 자연을 그렸지만, 전자가 관념적인 자연을 표현했다면, 후자는 현실적인 자연을 표현했기에, 깊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주제는 조금 달라지지만, 관념적인 자연과 현실의 자연을 대조하자면,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관념적인 남종문인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러한 기준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현실(現實)이 공허한 이념(理念 ideology)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이니까...  


 진경산수화란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로 특히 조선 후기(18~19세기)에 유행한 실경산수화를 가리킨다. 실경을 화폭에 담는 경향은 18세기에 와서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미 고려 이래 오랜 전통을 갖고 계속되어 왔다... 진경 眞景이란 원래 문인화적 개념이다. 대상의 겉모습만을 묘사한 형사 形似의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신사 神似의 그림을 진경이라 한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화보나 다른 그림을 모방한 그림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살아있는 그림[活畵]이다.(p102) <Korean Art Book 회화2> 中



[그림]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출처 : 위키백과]


 다만, 진경시대의 배경에는 명(明)나라 멸망으로 인해 중화(中華)의 적통을 우리가 이었다는 사대(事大)사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쉽게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다 해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목(辮髮胡服)을 한민족(漢民族)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嫡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산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p22)...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조선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워내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할 리가 있었겠는가.(p23) <진경시대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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