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 관한 역설 - 세계의 고전 사상 7-002 (구) 문지 스펙트럼 2
드니 디드로 지음, 주미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디드로가 보기에 위대한 배우란 무엇보다 자기 감정에서 벗어나 ‘감각의 지속적인 관찰자‘가 되고, 역사나 상상력으로부터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그것을 제대로 모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천재적인 자연의 모방자들은 ˝아름다운 상상력과 위대한 판단력과 섬세한 촉각과 매우 확실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가장 덜 감정적인 사람들˝이라고 못박는다.(p138) - 옮긴이 해설-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 1713 ~ 1784)는 <배우에 관한 역설 Paradoxe sur le comedien>에서 위대한 배우를 감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잘 모방하는 이로 정의한다. 디드로의 정의에 따르면 배우는 작품의 캐릭터(character)를 해석하고, 이의 이데아(idea)를 만들어 이성(reason)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무당(巫堂, shaman)과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무당이 저승과 이승의 중개자, 신과의 교섭자로서 자신을 비우고 신(神)을 자신의 몸에 태우는 반면, 배우는 자신의 주관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관찰한다. 무당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저승과 이승, 신과 인간을 매개한다면, 디드로의 배우는 의식의 영역에서 캐릭터와 관객을 중개한다는 점에서 이들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감성적인 배우는 자신의 역할 속에서 어떤 소외의 순간들을 한두 번은 겪을 겁니다. 그 순간들이 아름다울수록 더 강력하게, 나머지 순간들과 불협화음을 이루지요.(p113)... 감성적인 것과 지각한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는 영혼에 속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판단에 속하는 일이거든요...어떤 위대한 역할의 모든 범위를 포용하는 것, 거기서 명암과 부드러움과 허약함을 조정하는 것, 고요한 곳과 격발된 곳에서 똑같이 보이고, 세부 속에서 다양하고, 전체 속에서 하나되고 조화롭고, 시인의 재담과 변덕들을 구원하는 데까지 갈 만한 낭독으로 지지되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은 차가운 머리와 깊은 판단력과 섬세한 취향과 각고의 연구와 오랜 경험과 보기 드문 기억력의 작업인 것입니다.(p117)

감정을 느끼지 않는 조정자로서의 배우. 디드로가 말한 이러하 덕목을 갖춘 배우가 정말 위대한 배우일까. 계몽시대에 인간의 이성(理性)에 대한 절대 믿음 속에 태어난 이러한 예술관이 오늘날에도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배우에 관한 역설>에서는 감정과 이성을 분리해서 어느 하나만을 취하는 것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길 때는 그들이 격분했을 때가 아니라 그 격분을 잘 연기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여러 감정들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 어떤 때는 화내는 체하고, 어떤 때는 두려운 체하며, 동정하는 척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여러 감정들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 입니다.(p131)

그렇지만, 이들을 서로 분리할 수 있을까. 냉철한 이성으로 작품 전체를 내려다보고, 뜨거운 감성으로 순간을 연기해서 관객들을 몰입시켤 수 있어야 진정 위대한 배우라 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에 관한 역설>에 나타난 이성의 강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이성의 시대인 계몽시대(Age of Enlightenment) 지식인들의 예술관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