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 상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
페르낭 브로델 지음, 남종국.윤은주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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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증가 없이 그 모든 영광의 역사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인구혁명은 ˝가격혁명˝보다 더 중요했으며, 어떻게 이 사건이 아메리카의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기 전에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준다. 인구 증가야말로 인간이 능력 있는 일꾼이었다가 점차 큰 부담으로 바뀌는 16세기의 승리와 재앙을 만들었다.(p72)

13세기의 경제적 도약은 16세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진정을 유발시켰고, 정치적 대격변을 예비했다. 그후의 경제적인 후퇴는 도처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다음 세기 내내 계속될 이러한 파괴는 장지적은 경제적 침체 국면에 의한 것이었다. ˝중세의 가을˝은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을 포함하여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그라나다 왕국에 이르기까지 연약한 나무들을 베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완만하고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이다. 대체로 15세기 중반경 경기 회복의 징후가 분명해지자, 파괴와 혁신과 재생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p411)

16세기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는 부양능력의 증대를 요구했다. 16세기 지중해 세계는 이러한 부양능력의 증대 요구에 대해 삼림파괴로 응답하게 되었고, 이는 에너지 수단의 변화를 가져온다. 결국, 이러한 상황는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 변환은 진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60일 동안에 일주가 가능한 지중해 세계는 오랫동안 아주 간헐적으로만 다른 세계와 접촉했으며, 특히 극동지역과는 거의 아무런 연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다.(p35)

상품 순환의 지체는 이 세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상품, 화폐, 환어음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서로 스치고 마주치고, 서로를 기다려야 했다. 모든 상거래 중심지는 상품, 화폐, 환어음이 만들어 내는 다각적이고 변화무쌍한 콩종튀르를 끊임없이 경험했다. 그러나 느리게 순환하는 상품, 화폐, 환어음은 오랫동안 길 위에 머물러 있었다.(p42)

공증인 문서에 바탕을 둔 계보학적 연구를 통해서 결혼, 친척관계, 우정, 결탁이 암스테르담으로부터 리스본, 베네치아, 포르투갈령 인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혀냈다... 바로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중해가 북유럽과 달리 곧 출현하게 될 주식회사와 같은 대규모 회사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될 것이다.(p124)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지중해 세계는 폐쇄적인 자급경제 체제였다. 새로운 체제를 수용할 여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중해 세계의 쇠퇴는 예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에스파냐 제국은 두 갈래 선택지에 놓인다. 동지중해의 새로운 제국 투르크와 일전을 벌여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 아니면 제국의 보화가 모이는 저지대국가(네덜란드)의 부를 제국의 손아래 둘 것인가.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이상 지중해는 유럽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571년 레판토 해전과 1588년 칼레 해전(아르마다 해전)은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파냐 제국의 선택을 보여주는 발자취가 된다...

16세기 베네치아는 15세기보다 더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을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지중해의 중심이 아니었다. 지중해의 주요 활동 영역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면서, 오랫동안 부의 핵심 분배자 역할을 했던 동쪽 해안 대신 서쪽 해안이 확실히 유리해졌기 때문이다.(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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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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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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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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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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