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동생


 택배로 배달되겠지

 포장지를 벗기자마자

 바로 일어서서 걸을 거야


 물 떠 줘 말하면

 알았어, 하고 물을 떠다 주겠지...


 넌

 이제부터 착한 내 동생 <로봇 동생> 中

 

 방학을 맞아 딸아이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김바다 시인과 함께하는 자리를 위해, 작가의 책 중<우리 집에 논밭이 있어요!> <내가 키운 채소는 맛있어!> <로봇 동생>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는 다소 글밥이 많은 두 권의 책보다는 동시 <로봇 동생>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로봇 동생>을 가져갈 예정입니다. 


 동시집 <로봇 동생>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마트폰,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등 지금 아이들이 관심있어하는 소재로 쓴 동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봇 동생> 이라는 제목의 시(詩)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과의 공존을 노래하고 있어 여기에 잠시 생각이 머물게 됩니다. 과연 끝없이 발전할 것 같은 인공지능과 우리는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적어 봅니다.


 일단 세상에 등장한 강력한 AI는 죽죽 나아가며 힘을 늘릴 것이다. 그것이 기계적 능력의 근본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력한 AI는 곧 수많은 강력한 AI들을 낳을 테고, 그들을 스스로의 설계를 터득하고 개량함으로써 자신보다 뛰어나고 지능적인 AI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진화 주기는 무한히 반복될 것이고, 각 주기마다 더욱 지능적인 AI가 탄생함은 물론, 주기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질 것이다. 그것이 기술 진화의 속성이다.(p359)... 일단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가 등장하면(2029년경) 다음은 비생물학적 지능이 급속히 발전해가는 능력 강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특이점이 가능해지려면 인간 지능의 수십억 배이상 발전 해야 하는데, 그런 놀라운 팽창은 2040년 중반에야 달성될 것이다.(p360) <특이점이 온다> 中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 ~ )은 AI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어 머지 않은 미래에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 지능이 등장할 것임을 이미 2005년에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구단을 바둑으로 이기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이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우리를 앞선다는 것은 우울한 전망이 아닌 예정된 현실이 된 듯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질문 :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마음(heart)"이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감각한 반복고리들(loops)과 무감각한 사소한 연산들"(마빈 민스키의 표현)로 구성될까?


 추측 : 인공지능에 대한 두 종류의 극단적인 시각이 있네. 한편에서는 사람의 마음(mind)은 근본적이고도 불가사의한 이유 때문에 프로그래밍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 다른 한편에서는 적절한 "발견술적 수단들"을 복합하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지능을 가지게 될 거라고 주장하지.... 우리가 튜링 테스트에 합격하는 프로그램을 창조하면, 비록 그 프로그램에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마음"을 보게 될 거야.


 질문 :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언젠가는 "슈퍼지능"이 될까?


 추측 : 모르겠어. 우리가 "슈퍼지능"을 이해하거나 그것과 소통할 수 있을지 또는 그 개념이 과연 유의미한지도 명확하지 않아...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생물체라면 우리와 접점이 전혀 없을 거야... 비트겐슈타인이 한번은 "사자(獅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재미있는 논평을 했지.(p938) <괴델, 에셔, 바흐> 中


 <괴델, 에셔, 바흐 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에서는 이에 대해 인공 지능은 어느 정도의 마음을 가진 존재이지만, 우리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種), 한국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현실 속에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R. Hofstadter, 1945 ~ )의 이야기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한 큰 위안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한 불안. 동시 <게임 영화를 보고>는 이러한 엄마아빠 세대의 불안이 담긴 시 입니다.


 게임 영화를 보고


 가상현실 속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서

 나는 신나기만 한데


 어쩌니?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엄마는 한 아름 걱정이 생겼어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며 

 살면 될 것 같은데


 게임 그만하라고

 공부하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엄마는 휴우휴우

 한숨만 쉬고 있어(p76) <로봇 동생> 中


 그렇지만, 작품 안의 아이는 미래에 대해 엄마만큼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에게 IT 기기는 친숙한 이웃이기 때문일까요. 그들에게 인공지능, 로봇은 타자(他者) 아닌 자아(自我)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기동전사 건담>에 나오는 신인류(新人類, New Type)의 원형이 우리 다음 세대는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1948 ~ )은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 >에서 보다 적극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인간의 마음을 로봇에 이식시켜 영원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림] 뉴타입 : 샤아와 아무로 (출처 : https://aminoapps.com/c/anime/page/blog/char-amuro-an-eternal-rivalry/D7tP_umee5MWD6dx8PRMZPq055Zrrn)


 

 극단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직접 시뮬레이션 안의 어떤 몸에 '다운로드'하고, 우리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업로드'하여 나의 현실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과정을 역전시켜 그 사람을 시뮬레이션 밖으로 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외부의 로봇 몸에 연결하거나 그 안에 업로드 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과거를 다시 창조하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p214) <마음의 아이들> 中


 마음 비빕밥 


 내가 네 마음을 모르고 

 네가 내 마음을 모르니까

 내 머리에서 내 마음을 꺼내고

 네 모리에서 네 마음을 꺼내...


 내 마음과 네 마음을

 비벼서 나눠 먹었으니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거야(p44) <로봇 동생> 中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세 번째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마음의 아이들>에 제시된 마음 이전 mind trasfer이다.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옮기는 과정을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면 사람이 말 그대로 기계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이 인류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p15) <마음의 아이들, 해제> 中


 인간과 미래 기술(인공지능, 로봇, 나노 기술, 5G 등)이 공존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때문에,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마도 우리의 생각보다 미래를 잘 그려나갈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우리를 좀 더 믿어주기를 바랬듯이, 우리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우리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에 사로 잡힐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가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과 <내가 믿는 세상 This is I believe and other essays>는 불교 경제학을 기반으로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대상인 폭표를 변경하는 데 있음을 지적해준다. 그리고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에 그들의 적당하고 올바른 위치, 곧 주된 위치가 아닌 부차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원 고갈의 속도를 늦추거나 사람과 환경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기회는, 충분함을 선으로 취급하고 충분함을 넘으면 악으로 취급하는 생활 양식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는 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진정으로 도전해야 할 대상이 있으며, 기술적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도전을 모면할 수는 없다.(p331) <내가 믿는 세상> 中


 동시 <로봇 동생>을 읽으며 IT와 함께 자란 세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우리 세대의 과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기보다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남겨주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페이퍼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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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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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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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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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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