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그 질문에는 한 가지 편견이 깔려 있습니다. 바로 장식은 본질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라는 생각이지요. 무늬는, 아니 좀 더 넓게 보자면 미술은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부차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장식이 오히려 본질일 수는 없을까요? 빗살무늬토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적어도 이 토기를 만든 이들에게는 장식이 더 본질적인 요소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p19)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본격적인 미술 행위라고 할 만한 건 인류가 짐승처럼 소리를 내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 정교한 언어를 쓰게 된 다음에야 나타납니다. 정확히는, 정교한 언어를 쓸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의식이 발전한 다음에야 미술 행위도 가능해졌다고 해야겠죠...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생각들이 가능한 정도로 인류의 의식이 발전한 다음, 그런 생각을 서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미술이 나왔으리라고 보는 겁니다.(p3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는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관찰자의 관점이 아닌 미술품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품을 바라봤을 때 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하게 된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고 현세를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여겼기에 신체를 신성시하며 보존했던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현대인은 그렇지 않잖아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꺼리는 거죠. 이집트인과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대조적입니다... 이집트 미술이 마련해준 생각의 재료는 무엇보다도 죽음입니다. 이집트인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을 나름의 미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p354)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이집트에 비해 뒤처지는 투박함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미술에 녹아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는 거예요. 표면적으로야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메소포타미아 미술에는 인류 문명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도시혁명'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p364)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나일강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배경으로 일어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적었던 이집트 문명은 안정과 평온 속에서 죽음을 지향한 반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불안정함 속에서 현세를 바라본다. 농업생산력이 늘어나 도시가 출현했다는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거꾸로 도시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농업기술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이야기할수도 있거든요. 대규모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수로 관리가 필수적이고 수로 관리를 맡은 정치권력의 등장은 도시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도시혁명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p38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이집트 사람들이 현세의 평안을 사후에도 이어가고 싶어했던 내세주의자였다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현세주의자였습니다. 내세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울 만큼 현실이 냉엄했거든요. 미술의 성격도 그들의 생존 방식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요. 미술을 통해 힘과 권위를 시각화해서 경쟁자를 제압코자 했던 겁니다(p42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中 미술작품을 비롯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작품을 통해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는 길과 자신의 눈으로 당대의 목소리를 느끼는 길. 미술의 발전이 언어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감상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